동암 詩 모음

늦가을의 고추밭

동암 구본홍 2022. 12. 11. 19:30

늦가을의 고추밭

 

말없이 어둠 속을

고요히 머리 숙인

두 눈 감은 묵언 수행

등뼈 새운 저 가부좌

아무도

거두지 않은

저 마른 슬픈 나체

 

낮고 길게 가라앉은

밭가장이 잿빛 시간

휘어진 늑장 안개

직립의 늪 새바람

목이 쉰

허공의 입술

핥고 바랜 붉은 입술

 

붉어진 복사뼈로

버티고 섰던 짧은 계절

꿰매온 생의 수혈

맵도록 살았어도

아리던

푸른 등 허리

외발로 선 이랑에

 

새들도 짐승들도

울음 썩던 네 선 자리

일몰의 말 한마디

깨우치는 빈 가슴

질 팍한

생의 분진들

서릿바람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