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복사꽃 본문
언제나 홀로 서서
천여 년 제자리 지키는 늙은 복사꽃
긴 세월 아픔의 기록들
부둥켜 않고
땅속으로 혀를 내밀고
숨죽인 바위들 마주 보며
기도를 드리는
허리 휘어진 나무
재 넘어 우뚝 높은 산 바라보며
밤낮 긴 세월 동안
깊은 침묵만 켜켜이 쌓여있다.
오늘 하얀 생각 접고 멍하니 서 있다
내 마음 고요해진다
나뭇잎 끝에 맺힌 바람의 숨소리가 깊다.
옹이 몇 개
긴 세월 닳은 자국에
타버린 몇 겹의 바람과 그늘 위로
지나간 줄기 맥을 짚어 보는 나는
가난했던 한 페이지를 그려 본다
바람의 흰 뼈에 잠긴 회심곡
언덕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숲속에 기절했던
바라보는 시력의 초점 흐리게
나뭇잎 틈 사이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응시한 어둠의 깊이에
하얀 말씀들이 차게 가시를 새우며
켜켜이 바람의 분진들이 매달려 있다
흘러 버린 구름의 혈색은
비명보다 더 투명한 가벼움으로 젖어
무겁던 마음 유산 해 버린다
나무의 가슴막까지 차오르는
의문들을 나는 물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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