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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동암 구본홍 2022. 11. 9. 14:32

언제나 홀로 서서

천여 년 제자리 지키는 늙은 복사꽃

긴 세월 아픔의 기록들

부둥켜 않고

땅속으로 혀를 내밀고

숨죽인 바위들 마주 보며 

기도를 드리는

허리 휘어진 나무

재 넘어 우뚝 높은 산 바라보며

밤낮 긴 세월 동안

깊은 침묵만 켜켜이 쌓여있다.

오늘 하얀 생각 접고 멍하니 서 있다

내 마음 고요해진다

나뭇잎 끝에 맺힌 바람의 숨소리가 깊다.

옹이 몇 개

긴 세월 닳은 자국에

타버린 몇 겹의 바람과 그늘  위로

지나간 줄기 맥을 짚어 보는 나는

가난했던 한 페이지를 그려 본다 

바람의 흰 뼈에 잠긴 회심곡

언덕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숲속에 기절했던

바라보는 시력의 초점 흐리게

나뭇잎 틈 사이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응시한 어둠의 깊이에

하얀 말씀들이 차게 가시를 새우며

켜켜이 바람의 분진들이 매달려 있다

흘러 버린 구름의 혈색은

비명보다 더 투명한 가벼움으로 젖어

무겁던 마음 유산 해 버린다

 나무의 가슴막까지 차오르는

의문들을 나는 물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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