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아직 내 곁에 본문
대문 앞 대추나무/ 동암
공허한 가난의 주머니 채우는 것은
휑하게 뚫린 대문 지키는 대추나무같이
가정의 뼈를 새우는 울 아버지
식솔 같은 담부랑 아래 소풀를 다독이며
대추나무는 돌담부랑 어깨를 기대고 선
뭍으로 온 문지기입니다
평온은 아버지의 몫이지요
무거운 짐을 진 하루가 절뚝이며
일몰의 걱정을 바라다보며 서 있습니다
뿌리 깊은 가난
밟히고 또 밟혀도 무겁습니다
깊었던 설익은 하루 울안 찬바람 마시면
어둡고 축축한 그늘 맛이 납니다
막막함에도 내성이 생기는
허리 굽혀 일구어낸 살점들 눈빛을 보며
허기를 달랠 고된 해동의 발톱을 새우고
둥굴고 눅눅하고 미끄러운 예감의 일기를
아버지는 말없이 오감의 빛으로
행복을 파랗게 영걸어 피어 올립니다
세상에서 소외된 분노의 입바람 소리 외침이
짓밟는 발목을 뿌리치거나
세월 온기 바람으로 구부러진 등뼈를 새우거나
그늘진 가난을 덮기도 하지요
이때 아버지의 피는 온통 뜨거운 녹색이었습니다
세월의 파도에 으깨어지며
휘어진 등에 핀 잎과 줄기는
납작하게 숨 내쉬던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울 아버지의 땀방울이 가을엔
침묵으로 매달립니다
아직 내 곁에/동암
내 걸음도 조금씩 희미한 길 드뜸어 가네
마른 잎들이 바람에 날려 멀어져 가는 오후
우연히 나무 의자에 앉아
멀어져 가는 것들을 보네
멀리 떠난 꽃처럼 아름다웠던 것들을 생각하게 하네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것들
언제까지 숨소리 들을 수 있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묵묵히 서 있는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세월의 풍파에 기울임 없이 홀로 설 수 있는
아름다운 이름 언제까지 함께 숨쉴 수 있을까?
바람에 날려가는 마른 잎 바라보는 산모퉁이에서
한참 그대로 서서 그대를 생각하네
눈을 감아 보아도
살금살금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뿐
내 앞에 조용히
맑은 하늘 한 조각 내려앉네
하늘 한 조각 또 한 조각
가슴 깊이 담아보네
지금 내 곁에/ 동암
내 걸음은 아직 뜨거워서 그자리 서성이네
마른 잎들이 화마입에 물려 검은 피를 토하네
흘러가는 저 강물은 또 어디로 가나
꽃피던 길 횡하게 지워졌네
먹빛 길섶에 서서 멀어져 간 것들을 보네
뒤 돌아보지 않고 그냥 말없이 갔네
아파할 시간도 없이 어디로 갔을까
아름다웠던 것들을 생각하네
지금 숨 쉴 수 있는 머리 위로 비가 네리네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향기 머금고 묵묵히 서 있던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 있던 나무들 세월의 풍파에 기울림 없이
홀로 열심히 살아온 흙손 굽은 허리
아름다웠던 이름 누구인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화마 입으로 핧고간 산모퉁이에서 바라본
아름다웠던 야생화 바람에 날리던 마른 잎
키 큰 나무들 맑은 새소리
숲속에서 새어 나오던 휘바람소리
다 어디로 갔는지 생각에 잠기네
한참 그대로 서서 눈을 감아 보아도
살금살금 들리는 것은 적막 소리뿐
내 앞에 조용히 맑은 하늘 한 조각 내려앉네
하늘 한 조각 또 한 조각
가슴 깊이 담아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