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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이 별거냐

동암 구본홍 2023. 1. 11. 21:56

산다는 것이 별거냐

구본홍

 

얘야!

모켓불 연기가 덥다.

여름나기 전에 한번 들러 거라

텃밭에 심어놓은 옥수수 장마철 장비 올 때

몇 놈은 허리가 부러지고

남은 것들 눈알이 제법 또랑또랑 해가 졌다

요즘 회사들이 어렵다던데

너그들 다니는 곳은 어떠냐

경기는 좋아진다고 하지만

네 애미는 자꾸 걱정이 팔자인가 보다 야

방앗간 집 큰아들 지난 주말 왔다 갔는디

손자를 보았다나 어찌 다나

동이 엄마는 동동동 떠벌리고 다닌다

잘 보이지 않는 바늘귀 더듬더듬 실 끝 허공에 찔러 되며

네 애미 옆집 큰아들 애기를 자꾸 들먹인다

아무래도 한번 다녀가야 것다

 

작년 봄 늦추위에 매화 다 떨어져

해거리했던 매실나무에

올해는 제법 많이 달렸단다

충실한 놈 골라 너희들 주려고 매실즙 내려놓았다

산다는 것이 별거냐 너그들 보는 자미로 사는 게지

못 오걸랑 전화라도 가끔 넣거라

 

네 에미 요즘 와서 부쩍 늙어 보인다

머리 수술한 뒤 몸이 약해졌나보다

얼마 전엔 감기로 고생 했는디 이젠 개안타

옹골지게 아프고 나면 염소 즙이 좋다는디

길 건너 칠성이네 집에 부탁해 두었다

신경 쓰지 말거라

요즘 밤에도 더위가 기성을 부린다

아가 몸조심 잘하라고 일러라

오뉴월 감기 걸리면 고생한다는디

저번 산부인과 다녀와서 아직 소식 없쟈

서두르지 말거라

너무 걱정하면 상상임신이라나 뭐라나 걸린다는디

끼니 걸라지 말고 아침밥 잘 챙겨 먹으라고 일러라

소식 있으면 연락하거라

 

가을걷이 끝나면 에미가 한번 다녀오자 하는디

어짤란가 모르것다 또 연락하마

시골집도 함께 늙어 자주 앓는 소리를 낸다

오늘은 처마 밑 옆구리에 기동하나 받쳐 두어야 것다

모기는 왜 이렇게 기성을 부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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