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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비행중에는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동암 구본홍 2022. 10. 26. 16:57
비행중에는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구본홍
   
   
   
  전원을 꺼 주세요
   
  단단한 뼈 속에서 단한 번도 깃털이 자라는 것 보지 못했지만
  열리지 않는 작은 창밖 잠들지 않는 구름의 미소를 보며
  무릎 꾸부리고 둥둥 새처럼 날고 있는데요
  삶이 흔들려요 당신, 이젠 낡은 깃털 뽑아 버려요
  살 찢어지는 소리 흥건한 혀 감아 올리던 자리
  창에 낀 성에 같은 차가운 이빨 끼워 오목하게 씹을 때 마다
  바같세상 뜨겁게 못질하는 햇살처럼 아파요
  전원이 끓긴 전화기에서 그림 속 바람처럼
  보고픈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요
  기억에 양각으로 돌출된 그리움 눌러지 마세요
  숫자의 행간들이 겨울 밤처럼 잠 들었네요
  둥둥둥 수신 할 수없는 날들이 귓속에서 윙윙 거려요
  앞 의자에 붙은 모니터가 내 마음 홀랑 벗긴데도
  어깨 둥글게 웅크려 잠든 마누라는 꿈과 통화 하나봐요
  신발을 벗었어요 저려오는 발목을 올렸다 내렸다 하지만
  아내의 숨소리가 날닢 문장으로 통화 중이예요
  하늘에 나를 꽂아 허공을 만저 보내요
  무거움이 가벼움으로 느낄 때 어지러워요
  잠이 오는데요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나도 몰라요 일어서서 뒤돌아보니
  구름처럼 창백한 얼굴들이 졸고 있어요
  화장실 문 앞에서 도둑 고양이 눈빛 같이
  백인여자를 옆눈질하는 저 흑인 여자의 마음은 알 수 없어요
  여보세요, 물 한잔 주세요
  습기 가득한 바람이 그리워요
  기억나지 않는 기억들이 긴 목을 스르륵 내 밀다 닫히네요
  그런데 왜 몇 시간 동안 목마른 하루가
  이렇게 비좁고 딱딱한지 나도 몰라요
  가슴에 감아둔 생의 바람꽃 생각해요
  누구의 생을 그리워하는 건지
  누구의 쭉정이 된 아픔 기억 하는건지
  구름처럼 희고 가벼워지고 있어요
  지금 몇 시 인가요 흔들려요 하늘을 진동으로 바꿔 놓았군요
  내 몸의 열량이 히죽 웃고 있어요
  하얀 구름에서는 영혼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전화 통화 불가예요 다음 기회에 다시 전화 하세요
  나는 지금 비행 중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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