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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붉은 벽 허물수록 더 깊이

동암 구본홍 2022. 10. 26. 17:14

붉은 벽 암 허물수록  더 깊이   

구본홍

실직한 그가  훈장처럼 달고 온 붉은 벽 허물고 있을 때
그녀는 달고 쓴 나날 묵묵히 설거지 하고 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곰팡이 냄으로 덮어 쓴 바둥대던 생의 모서리들이 캄캄한 세상 흔들고 있다
높은 벽 그 두툼한 한가운데로 밀려난 
뜨거웠던 생의 한 조각 거머쥔 그는
아슴푸레한 목청 소리죽여 뒤채던, 아프다 그 외마디
바람 끌어 덮어도 호흡 한 줄기 푸르게 와 키워내지 못하고
몇날며칠 아니 반년쯤 또 다른 삶의 굴절마다
검은 머리 흰 수염은 한사코 계속 자라고 있다  
하얀 밥의 온기와 이빨로 손톱 물어뜯는 뜨거웠던 핏빛의 환청幻聽    
버틸 수 없을 만큼의 무게로 탈진한 나날 팽팽히 끌어당긴다
지상을 검게 물들이던 거스름 없는 생의 소용돌이 휘감았을 더듬이들 
이젠 푸른 열병이 지나간 불량의 꿈이다
화려한 경력 증명서는 운전과 정지를 반복하다가  
하얀 침대위에 누웠어도 소통되지 않는 붉은 벽이 가로 막고 있다
그의 불씨처럼 가물가물한 기적 찔러대는 바늘 끝
반추하는 삶의 봇짐 무거운 생각들이 링거줄을 타고 방울방울 흘러내리고
벽 앞에 엎드린 적금통장은 침묵을 연주하고 있다 
기도로도 묶어두지 못하는 저 질주의 올가미, 자를 수 있을까?
무엇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그 아련한 염원念願
생의 파장 한 장 힘겹게 넘기고 있다 
癌, 그 악마  넌 누구의 사신이냐
친구의 외로운 눈빛 한세월 설명 할듯 무겁다 
굴곡의 물음표 열리고 닫히며 요동치는 후회의 마디
냉혹한 일과 다시 쪼여 매는 불씨하나 가물거린다
허물어 지지 않는 붉은 벽 핥은 바람 한 자락 
병실 문을 나서며 그를 바라보는 나는, 
발자국마다 따라오는 차가운 시선 털어버리고 싶다 
순간, 나는 치매증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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