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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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밸리 거인을 보다/ 구본홍
시인들이 쓰다 버린 활자들의 무덤
저 강렬한 표정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입술 깨물던
책갈피 속 녹아내린 쉼표 하나
먼 길 걸어온 삶의 이정표 그 작은 한 알
하고 싶었던 의미 숨긴 채 세월의 각
바싹 마른 적막으로 매달려
질긴 인연 가 닿을 때도 없이
그는 말없이 낡은 책갈피 넘기며
더 푸른 욕심 같은 어휘 뿌리내릴 자리가 없다.
뜨거움의 속내 핥은 무소유로 선
선인장 가시 같은 서럽고 외로운 질문 있을 뿐
무게 중심 잡던 그 깊은 의미 숨긴 채
숨죽인 속으로 곰삭아 다져 놓은
바람이 벗기고 간 비명보다 더 서걱이는 언어들
몇 장의 수분을 태우며 듬성듬섬 지워진 흔적 위로
불탄 졸음 하나 올려놓을 수 없다
녹슨 철조망에 붙들린 덤불위드처럼
밤을 지새우던 눈빛 켜켜이 에우리고
관절 꺾인 미완성의 물음표들
사막을 말아 갈구하던 자욱한 문장 하나
내 눈의 오아시스에 붉은 열 내려보내는 사막
뜨거운 시간의 알든 뼈들 널브러져
모난 자음들 모음으로 반란이 한창이다
목마른 서향으로 더듬거리며
깊어가던 노을 목마르던 생각의 얼룩처럼 붉어
어둠의 바퀴에 진 눌린 채 향기 없이 흥건하다
이젠 더 이상 서걱거리던 지상의 마른 온기
기억해 내지 못하는 거인 마른 입술 날름거리며
서늘한 영혼의 체온 더듬어 보지만
풍화된 시간의 살 진화되지 못한 한 페이지
바람의 손끝에 침을 발라 넘겨보아도
서럽게도 낡은 문장들만 너부러져 있다
밀어 같은 눈먼 모래알갱이들이
돌아서는 등 뒤에서
페이지 없는 한 줄 시를 읽고 있다
주, 더스밸리: 미국 네바다주에 있는 거대한 사막
덤불위드: 바람에 굴러다니는 마른 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