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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늦여름

동암 구본홍 2022. 11. 14. 19:54

늦여름 얼굴

 

솜털 세우는 때 거름 당신
저녁이면 이젠 차가운 손으로 드르륵 문 열고 들어서는 군요
온몸 던져 싸우는 암 병동 절박한 희망 보듬던 따뜻한 손이었던
한때는 탱탱했던 당신 박 꼭지처럼 말라 가는군요
차갑게 식어가는 당신의 마음 아싹 씹으면
구멍 난 호주머니에서 목멘 붉은 소리 큰 가요
뒷굽 없는 발걸음마다 풀 벌레 소리 간조롬히 눕고
얼룩진 암 병동 창가 찰찰 한 밤바람 소리 따라
밤사이 비워진 병상 꾸겨진 홑이불마저 버거웠던
핏빛 잃은 육골 그 체온  
당신의 큰 사랑의 그 속에 들 수 있나요
파란 하늘 옷 입은 수수밭 고개 숙이네요
축 처진 당신의 어깨 위로 진록의 잎들이 아슬아슬 떨고 있군요
세상의 가 팔 막 바라보는 암 병동 열린 창밖 야산
무거운 몸 끌고 서쪽으로 가는 당신의 복사뼈 위로
오리 목도 너도밤나무도 깊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아물지 않은 상처 다독이고 있어요  
가만히 눈물 한 장 떨어뜨리는 무덤가
당신의 치마꼬리 붙들고 달맞이꽃 노란 입술 여닫으며
씨앗 하나 쓸쓸히 떨어지는 소리 듣고 있어요
얇은 온기 따라 으악 골 넘으러 솜털 구름 함께 가고 있네요
당신의 하얀 엉덩이 살 넘보던 능선마다
뜨겁게 그린 수채화 빛바래가요
활시위처럼 나무의 호흡 직간들이 소슬히 허공으로 당겨지고 있어요
당신의 가슴에 새긴 노을 문신 속에서
한 세상 흔들리다 먼저 간 영혼의 새때들 바라보고 있어요
아무도 오를 수 없는 가파른 뫼 등 가림 빛에 감추고
당신은 날개도 없이 가볍게 넘어가고 있군요
끝이 다시 처음이 되는 말 없이 떠나는 당신의 걸음으로 되들면
이때쯤엔 서슴없이 언제나 먼저 지는 몇 송이 꽃들이 있어요
암 병동 창밖 노란 얼굴 하나둘 떨어져요
차가운 몸으로 돌아 눌 당신
노란 티 갈색 바지 입은 친구들 갈퀴도 오그라뜨리고 있어요
까막새 노래 왠지 슬피 들려요
당신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그리고
쓸쓸함도 바스스 바스스 갈잎에 묻고 가시나요
가웃 지기 같은 정마저도 다 버리고 가시나요

그의 몸에 내린 갈 빛 뿌리가 깊어요
치유 治癒할 수 없었나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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