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29분 전 풍경 본문
29분 전 풍경
낙성대역 4번 출구 앞 긴 나무때기 의자에 앉아
약속 시각 29분 전, 막 문 여는 복덕방 그 앞 도보길
따뜻한 체온들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 흐름의 빛 감아 젖힌다
복숭앗빛 화장한 여자의 짙은 향 사그라지기 전에
갈색 머리 휘장 된 머리핀 전송된 햇살 따윈 무시한 채
국화꽃 봉우리처럼 가슴 살짝 열고
헤픈 웃음 내지르는 여자 앞질러
구멍 난 청바지 적정 온도를 잃어버린 실밥의 촉수로
지하철 입구를 뚫어지게 겨누는 여자
햇귀 드리우는 솜털 바람 은행나무 돌아 나가는 동안
감빛 구두 거위걸음 그 여자와 보폭 맞추며 걸어가는
살 오른 까투리 꼬리 같은 양 갈래 꽁지머리 여자
배낭 背囊에서 잘 익은 배 속살 메모지 끄집어내는 호흡 사이
코스모스 꽃대처럼 다리가 긴 여자 뒤를 핥으며
황소 코뚜레 같은 긴 가방 목에 걸고
우윳빛 속살 드러낸 채 치자 빛 짧은 치마 입은 여자
도둑맞은 사람처럼 등산 가방 메고 두리번거리는 눈길 앞에
밥사발보다 큰 가슴 출렁이며
몇 장의 신용카드 잔고를 생각하는 것처럼 회색빛 옷이 흐리다
나뭇잎 하나 인쇄된 쇼핑백 들고 CCTV 돌고 있는 사실 모른 채
자동차 엔진 소리처럼 점점이 멀리 사라진
밤빛 색안경 쓴 키 큰 여자
기다리던 시간 29분 남김없이 몰고 간 여자,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
그림자 서늘하게 드리운 9월의 끝자락
그 앞 말없이 길을 막는
저 침묵의 빛 노란 핵과 한 알 툭,
나는 가만히 떨어져 눕는 그 의미를 들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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