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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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동암
언제나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일리에 오면
바람과 풀꽃의 관계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키 큰 나무보다 풀꽃이 더 아름답다 하시던 어머니
당신은 한 포기 풀꽃이 되어
바람의 발걸음 숨죽인 듯 바라보고 계시나요?
다시 오고 싶다던 두물머리 늙은 느티나무 그 아래
낡은 목선 한 채 물길 낼 수 없는 뼈마디로 주저앉은
하얀 뼈로 남은 잔해 위로
바람이 스칠 때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열어
청청 깊은 물에 생의 뿌리 담그고 계시나요
어머니, 그때 그 자리 걸음 멈추시던
연분홍빛 절뚝거리는 연밭에서
빛이 빛을 삼켜버리는 순간에도
꽃을 먼저 보낸 성급했던 푸른 잎이
시간 바깥으로 무성한 잎마저 보내려는
그 숙명의 소용돌이 바라보고 계시나요?
한낮의 공허 속으로 하얗게 증발하는 시간
물 한 모금 머물지 못하는 텅 빈 꽃 대궁 줄기 그 속을
애잔하게 들여다보고 계시나요?
잊을까 하면 가슴 안에 물비늘처럼 일고 있네요
어머니 생전의 모습인 듯 풀꽃 한 송이
오늘따라 더욱 가슴 뜨겁게 저리는
그리움이 등 뒤로 와 햇살보다 뜨겁게 포옹을 하면
마당을 에워싼 초록 풀잎 더 푸르게 다가오네요
그때 그 목소리 창문이 열려 있어도 들리지 않는
이젠 늘 푸른 풀꽃이 되고 잎이 되어
뭉글뭉글 그리움의 아치 앞에서
슬픈 그리움의 빛 피는 걸 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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