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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바람의 형상

동암 구본홍 2023. 8. 1. 17:08

바람의 형상/ 구 본 홍

 

일어서지 못하는 풍선 하나

생명을 불어넣어요

둥근 얼굴이 생겼어요. 눈코 그려 넣으면

따뜻한 바람의 얼굴에 핏빛이 도내요

 

탯줄 자르면 말을 해요

하늘과 땅 사이로 둥글게 살면서

삶의 무게 안으로

영원한 죽음의 수의 壽衣로

집요한 집을 짓는데요

흔들리다 매운 삶의 한 가운데로

꽃향기의 비명 같은

생의 서툰 아우성 그 따뜻한 상처와

저울질할 수 없는 아픈 파편들이

둥근 모습으로 태어났어요

일몰의 붉은 빛 둥근 등을 떠밀던 서풍이

가끔은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요

망각 妄覺의 늪 속에서 건져 올린

삶 그 이전의 무의식의 한 올

과거와 미래 넘나드는 그 꽉 찬

내면의 밀도로 팽창하는 삶 밀면

시선이 직진하는 수평

먼 영원불변의 길을 생각해요

내공을 회전하던 바람, 아! 어머니

당신의 속과 당신 밖에 내가 있어요

밥과 물 질리지 않는 생명을 씹으면

덤으로 살던 지난 시간의 한 토막의 살점

세상 안의 세상과 세상 밖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어요

잠깐, 누군가의 그림자 보였다가 사라졌어요

깊은 밤의 뿌리 속에 반듯이 눕는 것은

분명 이름 없는 바람이거나

먼저 바람으로 되돌아간

기억할 수 없는 누이 같고

생의 비강 鼻腔 속에 응혈 凝血 뽑아내시던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바튼 삶의 숨 고르시던 어머니 같기도 하지만

그래요, 모든 바람의 살로 태어난

생명과 소리와 갈증마저도

고독한 날개를 파닥이며

아주 오래된 입자들이 바람으로 돌아갈 날

숨죽이며 조율하고 있어요

목구멍에 걸리는 울음들은

허공의 꼭지에 입김을 불어 넣기도 하지만

잠이 들면 몽상 속으로 생생하게,

내 귀 언저리를 맴돌며, 윙윙거리며

바람의 얼굴들이 사방으로 수줍은 교태를 해요

태양이 온 힘을 다해 쥐어짜 내는 바람의 씨앗

최초의 몸이면서 생명인 것

한 사내가 웃으면서 정거장에 둥글게 풍선으로 서 있어요

조금씩 바람이 빠져나가고 있어요

지울 수 없는 낡은 그림자 뒤로

본래의 바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잠깐 머물다 가는 둥근 모습 촉촉한 생이 수축하네요

나프탈렌처럼 생으로 졸아들다 증발하는 삶인가 봐요

이 땅에 비린내를 남기지 말아요

아! 덤의 삶이 끝나면 태양의 혓바닥을 꽂은 거기에

죽음의 육신과 섹스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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