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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한택 식물원에서

동암 구본홍 2023. 8. 11. 17:53

한택 식물원에서

 

무더기 무더기로 핀 얼굴들이 고와라

갓 태어난 백옥의 살빛 따뜻하다

봄 햇살에 안겨 배냇잠 자는 모습 보면

문득 산부인과 분만실이 떠오른다

여기 몇 호실입니까?

모든 게 있는 그대로 곱고 촉촉한

호실마다 마른 입술 깨물던 산고 치른 자리

자유 없는 몸이 자연스럽게

나사처럼 뒤틀리다

태산을 무너뜨릴 힘에 떠 밀려 나온 아직은 가벼움의 몸짓

정해진 통로를 향해

발버둥은커녕 무참히 오므리고

들리지 않는 비명마저 봉쇄당한 캄캄한 문

세상을 향해 나온다는 것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향기로운 것은 고요한 어둠을 부수고야 얻을 수 있다는 것

한택 식물원 산실마다 고통을 이겨낸

빛을 내 뿜는 이름들

부채붓꽃, 금낭화, 매발톱, 개불알 꽃

원시의 빙하 빨아올려 벅찬 웃음 터트리고 있다

혼절을 거듭한 고통스러울 때 더욱 아름다운

한택식물원 오월 젖은 방마다

젖 물리시던 어머니 젖비린내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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