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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그다음 날

동암 구본홍 2023. 8. 17. 08:51

그다음 날

 

단단한 몸을 자랑하던

학창시절 축구선수였던 내 친구

어제 병문안 다녀왔다

만삭인 듯 축구공처럼 탱탱하게 부푼 복부

바라보기조차 위태로웠다

세상은 월드컵 경기로 들떠있는

해묵은 배터리 얼룩 맑은 약물로 씻으며 씻어내며

지금 조용히 기도로 누워

넓은 운동장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푸석한 그의 눈빛 속에

빛바래기는 기억의 능선 울컥울컥 차올랐다.

푸드덕 새처럼 날개를 펼치고 날고 싶은

따뜻했던 날개 깃털은 많이 빠진 채

환자복을 축구유니폼처럼 입고 있는 모습

먹물 먹은 한지처럼 해쑥 하다

그는 링거 줄 뽑으면 금방이라도 운동장에 나가 뛸 듯이

입술에 힘주어서 하던 말들이

꼬리를 물고 병실 문 밖으로 함께 따라 나셨다

그의 얼굴은 텅 빈 운동장 하프라인 중앙선처럼 쓸쓸해 보였다

다음 날 오후 전화 한 통화

한 참 말이 없다 서서히 증발하며 가늘게 이어지는 목소리

“친구는 갔어요. 오늘 아침 5시 18분에….”

향불로 타다가 꾸부러져 매달린 재처럼

고개 숙여 조문하고

어제 문밖까지 따라 나오던 축구 얘기 대신

쓸쓸히 매달린 조등처럼

영안실 밖 휴게실에 앉아 월드컵 스포츠뉴스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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