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꽃 덮개 본문
꽃 덮개
첫눈 내리는 내 움막 마당에 목련 나무가 서 있다
피비린내 촉촉한 솜털 가지런히 침묵을 깨우며
꽃 덮개 활짝 열고 환한 웃음 뒤척뒤척 피우고져
올봄에도 어김없이 마당에 꽃덮개 툭툭 던져놓은
겨울이 오고 한 장 남은 달력 남은 날짜처럼
가지 끝 숨 모두고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사이
꽃 덮개 첫눈을 맞는다
기억에서 사라진 그 사람들 모습인 양
쥐색 빛 껍질에 파인 깊은 주름과
상처로 아문 흉터 군데군데 먹빛으로 얼룩처럼 새겨놓고
갈색 울음 얼어붙는 서러운 매듭 달
하얗게 그리움을 포박하며 서서
묵념에 잠긴 저 모습에서
묵언의 의미 전해 주던 가지 끝에 매달린 그 말씀
그 바람 소리가 지날 때마다 한 송이씩
하얀 눈밭 위로 적갈색 꽃덮개를 벗겨낸다
그 따뜻했던 소용돌이 빗금치고 지나간 자리
매운 매질 견디다 못해 눈밭 위로 떨어진 그것, 꽃덮개
나는 갈라진 지문의 꽃이라 불러 주었다
맑은 겨울밤에는 고개를 들어
지문의 꽃을 보는 그럴 때는 저 먼 허공으로
별꽃들이 아래로 쏟아 질듯 찰랑거렸다
오그라 붙은 혀를 감추며 구원하듯 팔 벌린 나무
마당 묵빛으로 옷 갈아입은 얼얼한 밤
꽃 덮개, 또 하나 뚝 눈 위에 서늘하게
문득. 먼 나라로 간 손녀가 보고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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