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눈 내리는 설 전날 밤 본문
눈 내리는 설 전날 밤
시골 고향 집이 자꾸 눈에 밟힌다
뒤란 장독대에 그늘 드리우던
무성한 푸른 잎의 고욤나무 그 아래
구수한 손맛의 내 어머니 생각이 맵다
밤이면 찬별이 쏟아져 내리던
거울 빛 우물에 어리던 얼굴들
언제나 이맘때면 맷돌질 소리
사갈사갈 들릴 듯한 기억으로
지금 하얀 무늬로 사르락사르락
도시의 좁은 골목길에는 눈이 내리고
손님방에 선 가슴엔 그리움들이
풍랑에 부표처럼 흔들린다
십 남매 오글오글 누에고치처럼
누운 머리맡에 놓여있던
고구마 가마니 손가락으로
날줄 씨줄을 헤집어
헐렁한 허기를 채우던 그 사랑채 방
텅 빈 마당 귀퉁이에 마른 숨소리로
세월의 행간을 갈아 눕히고 있던
주인 잃은 쟁기 녹슬어
세월의 휘호 리에 날 무딘 지문으로 걸려있을 그곳
봉홧불처럼 가물거리듯 꺼지지 않는 그리움
아직도 송곳 이빨처럼 아프게 찔러댄다
돌담 아래 살구꽃 밤새도록 환하던 까치 울 내 고향
“이제 올 때가 되었다”
“춥제?”
“머 하러 나왔능교”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정겹던 한 마디
생각하면 그 말은 망태기처럼
흐느낌의 부스러기까지도 끌어 담고 싶은
어머니의 뜨거운 가슴이었다
어느 시인이 노래처럼 “
벼락 속에 들어앉아 꿈을 꿀 때도
네 꿈의 마지막 한 겹 홑이불” 어머니
오글보글 찌개 끓듯 출렁이던 웃음이
댓돌 위까지 흘러넘치던
그 시절이 아련거리는 설 전날 밤
창밖 가로등 아래 대답 없는
도시의 텅 빔 골목길 하얀 그리움 소복이 쌓인다
이 밤 눈說이 내리고
섣달 그믐밤 펑펑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자꾸만 환해져 오는
내 기억의 고향 차가운 생각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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