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본문

동암 詩 모음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동암 구본홍 2022. 11. 22. 13:51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주산지 물빛 /조 성 문

 

청송땅 샛별 품은 갈맷빛 외진 못물 갓밝이 저뭇한 숲 휘감아

도는 골짝만 된비알 뼈마디 꺾는 물소리 가득하다.

호반새 울음 뒤에 퍼지는 새벽 물안개 실오리 감긴 어둠도 한

올씩 풀어내고 삭은 살 연기가 되고 재 되는 저 춤사위.

사는 일 짐 부려 놓고 제 거울 들여다보는 고요도 버거운 이

차갑게 돌아앉고 못 속에 누운 왕버들 퉁퉁 부은 발이 시리다.

숨 돌릴 겨를 없이 짙붉게 타는 수달래 먹울음 되재우고 저마

다 갈 길 여는가 내 앞에 툭툭 튄 물살 쌍무지개 지른다.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화첩기행/김종훈 

 

오종종한 징검돌이 샛강 건너는 배경으로

미루나무 두엇 벗삼아 길나서는 물줄기와

기슭에

물수제비 뜨는

아이들도 그려 넣는다

 

여릴 대로 여리더니 어깨 맞댄 물길들이

한 줄 달빛에도 울렁이던 맑은 서정을 삼키고

여울은

화폭을 휘적시며

세차게 뒤척인다

 

구도마저 바꿀 기세로 홰를 치며 내달리다

분 냄새 이겨 바른 도회지 그 풍광에서

노을 빛

그리움에 젖어

물비늘 종일 눕는다

 

어느새 귓가 허연 강가 풀빛 아이 불러내며

캔버스를 수놓던 현란한 물빛 지운 채

꿈꾸던

역류를 접고

강은 고요 속으로 흐른다

 

200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겨울, 새벽 일터 /김진길

 

외투깃 절로 서는 대한절 이른 아침

밤새 지친 가로등이 어둠을 배웅하고

발갛게

얼음 든 귓불,

목도리를 후빈다.

 

장작불 익어가는 공사장 한 모퉁이

곁불 쬐는 인부들의 웅숭그린 어깨위로

허어연

입김 오가며

안부를 건네고

 

아직 어스름한 언 땅위의 그림자들,

잉걸불 환한 온기로 가슴마저 녹여내며

묵직한

삶의 봇짐을

한 덩이씩 부린다.

 

알큰하게 몸 더워야 하루가 거뜬하다고

바람 숭숭 든 찌개에 소주 한 잔 곁들이는

한평생

노역의 훈장이

새벽달에 빛난다.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화첩 기행/ 김종훈

 

폭포 소리 휘몰아친다

강하고 화려하게

절창의 한 대목을 풀어놓은 가을 캔버스

제 노래 겨워 겨워서 산과 산이 자지러진다

굿판은 끝이 났다

주연은 이미 가고

추임새로 덧칠하던 꾼들마저 하나 둘 떠나

늦은 밤 불꺼진 무대, 시나브로 무너진다

뉘우침이 밀려온다

섣달 초입 그 한기처럼

버릴 거 다 버리고 구원하듯 팔 벌린 나무

나이테 또 하나 그리며 속절없이 여위어간다

이제 붓을 놓으려나

다독이는 침묵의 말들

화폭마다 다복다복 여백을 채워 넣고

순백의 적요 속으로 풍경들이 걸어간다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국립중앙박물관/ 한분옥

 

투명한 유리 집에 한 여인이 살고 있다

천년이 흘러간 뒤 다시 천년 반석에 놓여

꽃 같은 싱싱한 웃음, 늘 그 자리에 바치고

세속 모든 언어들이 여기와 갈앉는다

풍경도 울지 않는 채, 감도는 작은 고요

해묵은 청동의 녹이 봄빛 파랗게 물들이고

가까이 다가서면 이웃집 아낙도 같은

어쩌면 옷깃 한번 스치고 간, 머언 인연 같은

아니야, 나를 어루신 우리 어머니 손길 같은

실선 따라 흘러내린 빛나는 고운 눈썹

떨쳐낸 유혹하며 숨겨진 예감하며

살 에는 바람 소리도 춥지 만은 않구나

 

 

2006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주남 저수지/ 이화우

 

한기가 엄습하는 주남지의 겨울은

보냄이 두려운지 제 몸까지 얼어붙어

조그만 흔들림에도 파열음을 내보인다.

지상에 매인시간, 속절없이 풀리고

붙박인 삶을 거듭 강요하는 갈대들

시린 손 하얗게 닿아도 거둘 줄을 모른다.

묵묵히 떠날 때를 기다리는 새들은

습관처럼 부리로 물속을 더듬지만

채우면 채운만큼의 헛배도 불러온다.

묻어나는 그리움, 별빛에 길을 두고

귀향을 서두르는 부산한 마음 있어

어둠에 눈은 더 커져 그 빛까지 삼킨다.

 

 

2006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핸드폰/ 서 정 택

 

기약에서 멀어질까 시시로 하늘 창 열고

소슬한 목청 걸어 임에게 보냅니다

목련꽃 도드라지며 향 올리는 사월이면

생전에 못 다한 말씀 무슨 생각 그리 깊어

매냥 어루던 항아리에 젖은 꽃잎 띄웁니까

김장파 실뿌리보다 짜고 매운 눈물 꽃

당신의 등 뒤에는 다 큰 눈이 있습니다

진동처럼 흔들일 때 함께 움찔하면서

긴 세월 종지에 담긴 겨자 찍던 눈입니다

아버지 내 아버지 버들잎 같은 내 아버지

여린 가지 죄다 꺾어 이 몸에게 내리소서

깍지 낀 손가락 풀어 사다리 엮어 드릴게요

 

200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용대리 황태덕장 /이 우 식

 

저들은 지금 한껏 목청 돋우고 있다

동해 푸른 목숨 비릿한 몸을 빌어

가슴 속 대못 지우며 뽑아내는 판소리

파도가 울어대고 폭풍이 내달리는 건

결코 환청(幻聽)이 아닌 누군가의 거친 숨결

본능의 아름다움이란 아, 바로 이것인가

벌떡 일어나서 성큼 성큼 다가온

산이 불을 토하듯 단숨에 휘갈겨버린

그것은 저 이중섭의 `흰 소'같지 않은가

서릿발 맺힌 매듭 한결 풀어 젖히고

언 몸 서로 부딪쳐 뜨겁게 비비다가

벼랑끝 붙잡은 손을 타악 놓은 그 장엄.

 

 

2006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내소사 설화/ 이은정

 

내소사엔 아직도 꽃봉오리 맺혀있다

꽃살문 사이 사이 천여 일이 맺혀있다

바래고 지워진 세월 결 따라 맺혀있다.

사미승 두고 간 마음 한쪽 들여다보면

아득하고 아득하여 목탁소리 처연하다

몇 번의 업을 닦아야 꽃봉오리 피어날까.

내소천 가로질러 살아나는 시간들

물이 되고 흙이 된 사람들을 잊지 못해

천년의 대웅보전 곁에 꿈결처럼 맺혀있다.

 

'동암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춘문예당선 시 모음  (1) 2022.11.22
꽃 덮개  (0) 2022.11.22
밤 夜  (2) 2022.11.22
허물고 홀로 남은 기둥  (1) 2022.11.22
겨울 연밭  (0) 2022.11.2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