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밤 夜 본문
밤 夜
밤夜이 일어서다
전성기를 날려버린 어느 까만 긴 머리 여인 같다
이승과 저승을 지키며 별빛으로 외치는
측정 할 수 없는 거리 무중력 상태로
울긋불긋 풀어놓은 산의 빛 돌돌 말며
차갑게 가장 가난한 표정 짓는다
내 몸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의 모습
언제나 그를 만난다는 것
또 다른 운명으로 새로운 만남을 받아들이는 것
이때 즘이면 하얗게 빛바랜 떠돌이 말씀들이
환한 풀 한 포기 일으켜 세우지 못한
얼어붙는 계절로 추락하고 있다
어둠, 어느 먼빛이 풍화된 뒷모습일 테지만
더 선명하게 출혈시키는, 이 고요
누군가 이 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외로워 흐느껴 울기도 하는
오직 번민 煩悶으로 빠진
무너진 돌담의 차가움에도 빈집 벽화에도
창밖 빨랫줄로 포박당한 버팀목에도
계절의 입김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블라인드는 가탈 부리는 빛의 소리 걸러내며
이미 사라진 것들 뒤로 일상 넘기면
생의 과녁에 꽂힌 그들
낯설지 않다. 이 서늘함
낙엽들이 젖고 있는 밤 夜
나는 창밖으로 일 획 치는 암흑의 묵향에 갇힌다
'동암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덮개 (0) | 2022.11.22 |
---|---|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1) | 2022.11.22 |
허물고 홀로 남은 기둥 (1) | 2022.11.22 |
겨울 연밭 (0) | 2022.11.21 |
노란 호박 (0) | 2022.11.21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