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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붉은 입술 한 잎

동암 구본홍 2022. 11. 26. 06:49

 

붉은 입술 한 잎/동암

 

수묵 빛 그늘 안으로 시간의 행간 사이사이

꽃 피어도 향기 없이 적막한

긴 응시

고추잠자리

느낌표로 나른다

 

마른 가지에 걸려있는 저

외딴 기억 같은 풀꽃 바라보기조차 아리다

마지막, 눈도 귀도 버린 채

섶도록 유영하는 낡은 일상들

바스락바스락 구겨진 마음

한 벌 가볍게 내려놓고

물소리 핥으며 메마른 귀 씻는다

쪼그려 앉은 햇살 위로

올올이 헤진 기억

핏빛 애환 희오리 쳐 걸어 나와

먼 길 속으로 외마디로 날아간다

시큰둥 저문 길 얼쩡대며

등 굽은 노송들이 울담 넘어 우웅 울 때

하루 치 뙤약볕 중력을 잃고 헤면다

매운 가슴 뚫고 돋아나는 진솔의 흰 환란

마른 풀잎 누워 잠든

절벽을 타고 오르는 매운바람 숨 가쁘다

녹태 낀 울음소리 차가운 귓가로

탈속 脫俗의 몸부림 매캐하게 젖어 든다

바람결 다듬고 벼려

스스로 가벼워지는 무게여!

아직 채 식지도 않은

선체로 구도에 들어 숨차게 지는 잎

무늬조차 버거워서

눈 시린

붉은 입술 한 잎

무표정으로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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