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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소주 한잔하고 싶어진 따뜻한 저녁이네요

동암 구본홍 2022. 11. 26. 07:26

 

소주 한잔하고 싶어진 따뜻한 저녁이네요

 

어 성이던 모서리 달빛 묻어오는 저녁때

삐딱한 천막들이 앞다투며 머리 내민

골목 저잣거리 지나 마트에 가요

쇼핑 일기예보 손에 꼭꼭 접은 아내

두리번두리번 생각들이 뜨거워져요

요즘 애호박까지 고개 들고 폼 잡는 데요

들었다 놓았다 고개 갸우뚱

싱싱한 푸성귀 진열대 앞

향내 짙은 잘 익은 햇과일들이

앞다투며 고개 쳐들고 아우성이네요

아내의 심사 深思 앞에,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장보기인데요, 당신

직립으로 꽂히는 유혹 칼로 베듯 뿌리쳐 보셨나요

발품으로도 고르지 못한 몰입의 긴장

계산대 앞에 선 아내는 고민 아삭아삭 씹어 봐요

늘 경험 하는 일이지만요

아내는 넘치는 무게 내려놓는 데요

마음 채운 장바구니 무게 의심하지 마세요

절제하고 절제하며 장을 봤어도

더 줄일 것이 있나 봐요

살까 말까 망설이는 아내의 모습 바라보면

꿈틀거리기 시작해요,

자꾸 생생한 어린 그때 그 기억들이 일어나요

어머니 오일장에 갔다 돌아오실 적에

볏짚 오라기로 간 절인 갈치 한 마리

허리 접어들고 오시던 옛 생각들이

더 깊이 요동치는 데요

마누라 모습이 곧

우리를 키웠던 어머니 모습 같아요

내 푸른 기억 꺼내는 아내의 모습 앞에

입술을 깨물어 봐요

몸속으로 으스스 환기가 감돌아요

산 물건 유심히 눈 여겨봐요

배고팠든 헐렁했든 한철 스쳐 지나가요

대형 마트 앞 널브러져 있는 빈 병들이

민망스럽게 쳐다봐요

쪼개고 또 쪼개고 정해진 생활비 쓰는데도

인색한 아내이지만요

가정의 대소사엔 아끼고 또 아껴두었던 목돈 내놓는

여보세요,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라 하지 마세요

 

나는 가만히 아내의 마음 끄집어내어 깨물어 봐요

덜컹, 아내와 소주 한잔하고 싶어지는

따뜻한 저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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