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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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2010년 신춘문예 당선작

동암 구본홍 2022. 11. 26. 07:50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풀터가이스트( 불안정하게 소란을 피우는 영()

성은주

 

하늘은 별을 출산해 놓고 천, , 히 잠드네

둥근 시간을 돌아 나에게 손님이 찾아왔어

동구나무처럼 서 있다가 숨 찾아 우주를 떠돌던 시선은

나를 더듬기 시작하네

씽끗, 웃다 달아나 종이 인형과 가볍게 탭댄스를 추지

그들은 의자며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고

가끔, 열쇠를 집어삼켜 버리지

그럴 때마다 나는 침대 밑에서 울곤 해

스스로 문이 열리거나 노크 소리가 들릴 때

화장실 문은 물큰물큰 삐걱대며 겁을 주기도 해

과대망상은 공중으로 나를 번쩍 들어 올리지

끊임없이 눈앞에서 주변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조였다 풀어져

골치 아픈 그들의 소행에 시달리다 못해

어느 날, 광대를 찾아갔지

광대는 자신이 두꺼운 화장에 사육당하고 있다며

웃어야 할 시간에 울고 있었어

천장을 훑어 오르기 위해

어둠 속에서 그들은 그림자를 흔들고 있어

자연스럽게 때론 엉성하게

그러다 접시가 입을 쩌억 벌렸어

누워있던 골목들 일제히 제 넋을 출렁였지

붙어있던 그들은 홀가분하게 나를 떠났어

온갖 소동 부리고 떠난 자리,

무성한 음모만 시끄럽게 남아있네

 

* Poltergeist: 불안정하게 소란을 피우는 영()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시 당선작

속옷 속의 카잔차키스/이길상

 

잘 갠 속옷 속에는 영혼의 세숫물이 썩어간다

눈을 씻어내도 거리의 습한 인연들 내 안을 기웃거린다

내 폐허를 메울 사막은 그때 태어난다

반성하듯 내복을 차곡차곡 갤 때 올마다 낙타 한 마리 빠져나간다

, 속옷을 갤 때마다

개어지지 않는 내가 보인다

불운 견디게 하는 사막 풍경은 상향등처럼 켜지고

내 안의 나를 알고 있는 생이 뭔가 흘리면서도 아파할 것이다

서른 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감히 물을 수 없을 때 부르튼 입술은 길을 알고 있었다

맹인 바구니의 노래가 퇴근하지 못한 마음에 파고들수록

노래 속 세상을 그쯤으로 짚으며 난 힘겹다

감이 잡힐 나이, 노래의 무거움은 몸 밖에서 온다

우산 안에서도 젖는 내일의 삶, 울음 삼킨 시늉할까

그래 달콤한 사막 밤의 모래 폭풍은 고독으로 피어난다

몸 밖의 사하라, 헛것 두르며 새벽 추위마저 껴입는다

내 속 깊은 모퉁이는 안전하게 돌아나간다

안경은 양심의 속때, 나를 잘 아는 신발은 닳은 굽 한 장 더 깐다

사는 일로 얼어붙은 옥탑방, 열쇠 구멍 나를 열지 못했으므로

계단 낮아도 허공의 높이 착실히 밟아갔을 거다

응시할수록 더 귀 먹은 삶의 발목

흩어질 가시나무 속에 내 얼굴 보인다

발목 깊이 쌓이는 생

추운 종아리의 살빛, 많이 본 듯할 때

책과 길마다 죽은 하늘이 펄럭인다

속옷을 갤 때 후회의 올마다 낙타, 낙타들 쉽게 빠져나간다

거죽만 진지한 나의 사막

 

 

[201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제비꽃 향기 / 김은아

 

생선뼈만 남은 개 밥그릇에

개미가 아우성이다

시간이 지나자, 삶의 살을 뼈만 남긴 채

말라가는 빈 밥그릇에서

시간을 붙잡고 보시를 하는 중이다

 

한 때

거친 바다를 헤엄쳐

푸른 꿈을 키웠을 너

어쩌자고 사람들 입 속까지 들어와

피와 살이 되고 마침내 개 입에서

생을 마감하는 너에게서

제비꽃 향기가 난다

 

햇볕이 개 밥그릇을 헤집는데

생선뼈는 온 몸으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201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구름의 화법 / 하기정

 

구름은 여태 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어

형상은 당신 머릿속에나 있지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물방울이 아니야, 보다 가볍지

당신의 어깨를 적실 수도

당신의 입가를 핥을 수도 있지

그러니 나를 구름이라 이름 짓는 건 아주 치명적이지

네가 구름이라고 부르는 것들, 네가

토끼, 라고 부르면 난 하마처럼 하품을 해 네가

고양이, 라고 부르면 난 호랑이처럼 포효하지 네가

의자, 라고 부른다면 금세 침대를 만들어 줄 수도 있어

만지면 폭삭 꺼지는 먼지버섯, 그러니 나를

버섯이라 불러도 좋아

형상은 당신 눈 속에나 있지

그러니S라인 B라인은 네 이름

무대가 아닌 곳에서만 춤을 출거야

내 음악은 내 귀로만 흘러들어 언제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어 나를

이해하려 시도한다면 그것은 서툰 오해

나를 만지려든다는 건 아주 절망적이야

롤러코스터를 생각한다면 모르지

추락은 오로지 빗물, 눈물

행여 구름을 담아서 팔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의 시선을 구부리는 일

악어, 라고 하면 도마뱀이 되어줄래?

고래, 라고 하면 돛단배가 되어줄래?

나에게 나를 너, 라고 불러줄래?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201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팝나무에 비 내리면 / 홍종권

 

당신은 육지를 떠나기 전이면 뒤뜰에 있는 이팝나무 아래로 불러내곤 했지요. 이팝나무 한 뼘 위를 회칼로 그으며, 그만큼 자라면 온다고 무슨 굳센 다짐처럼 말하곤 했지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팝나무 아래에서 키를 재어 보았는데요. 키 대신 등짝에 파도소리가 자라곤 했었지요. 해가 기울수록 길어지는 그늘은 내가 미리 살아버린 주름이었을까요. 이팝나무는 꽃을 버릴 때마다 나이테가 늘어갔던 거예요.

 

먼 바다에서 당신배가 물결을 가를 때마다 일어나는 물살이, 제가 엉덩이 깔고 앉아 있는 포구 끝에도 닿는 것일까요. 하얗게 터지는 물살에선 목욕탕 스킨냄새가 나네요. 바다가 물결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물결이 바다를 그물처럼 가두고 있단 생각을 했어요. 바다가 당신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다의 것이었거든요.

 

어둠이 달을 꽉 가두고 있는 밤은 비가 내렸지요. 어김없이 부엌은 생선 굽는 냄새에 몸살을 앓았고요. 저녁상에 올라 온 민어를 뒤집다가 손등을 얻어맞기도 했어요. 하늘에서도 물고기가 튀는 것일까요. 유리창에 맺히는 빗소리에선 심한 비린내가 나요. 그런 날은 이불속에서 뒤척거리는 일도 조심스러워요. 나는 당신에게 수평선을 그어 주던 아이였을까요.

당신의 주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던 달의 인력이 오늘밤은 시린 손가락으로 내 발목을 잡는 걸요. 밀물 든 바닷가에선 빗소리가 주저 앉고요. 잃어버린 당신의 키는 언제쯤 만조를 이룰 수 있을까요. 사리*와 같은 당신과 나와의 거리에선 빗소리가 쌓이지요. 비가 오는 밤은 달이 이빨이 아픈 꿈을 꾸는 건가 봐요. 이팝나무에 빗소리를 그어놓으면 우린 한 뼘 지워질 수 있을는지요.

 

2010 한국일보

검은 구두  / 김성태

 

그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동굴이며

구름의 속도로 먼 길을 걸어온 수행자입니다

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그가 걷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거나 어긋난 교차로입니다

지하철에서부터 먼 풍경을 지나

검은 양복 즐비한 장례식장까지

그는 나를 짐승처럼 끌고 왔습니다

오늘 나는 기울기가 삐딱한 그를 데리고

수선가게에 갔다가 그의 습성을 알았습니다

그는 상처의 흔적을 숨기기 좋아하고

내가 그의 몸을 닳게 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와 정면으로 마주한 적은 없지만

가끔 그는 코를 치켜들기 좋아합니다

하마의 입으로 습기 찬 발을 물고 있던 그가

문상을 하러 와서야 나를 풀어줍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그를 만져보니

새의 날개 안쪽처럼 바닥이 움푹 파였습니다

두 발의 무게만큼 포물선이 깊어졌습니다

그의 입에 잎사귀를 담을 만큼

소주 넉 잔에 몸이 가벼워진 시간

대열에서 이탈한 코끼리처럼

이곳까지 몰려온 그들이 서로 코를 어루만지며

막역 없이 어깨를 부둥켜안고 있습니다

취한 그들이 영정사진처럼 계급이 없어 보입니다

그가 그에게 정중한 인사도 없이

주인이 바뀐 지도 모르고

구불구불 길을 내며 집으로 갑니다

 

 [2010 경향 신춘문예]시부문

 

직선의 방식’- 이만섭

 

직선은 천성이 분명하다 바르고 기껍고

직선일수록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는 곧 정직한 내력을 지녔다 하겠는데

현악기의 줄처럼 그 힘을 팽창시켜 울리는 소리도

직선을 이루는 한 형식이다

나태하거나 느슨한 법 없이

망설이지 않고 배회하지 않으며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단순한 정직이다

밤하늘에 달이 차오를 때

지평선이 반듯하게 선을 긋고 열리는 일이나

별빛이 어둠 속을 뻗쳐와

여과 없이 눈빛과 마주치는 것도

직선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가령, 빨랫줄에 바지랑대를 세우는 일은

직선의 힘을 얻어

허공을 가르며 쏘아대는 직사광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뜻이 담겨있다

그로 인하여 빨래는

마음 놓고 햇볕에 말릴 수 있을

것이다

바지랑대는 빨랫줄로 말미암고

빨랫줄은 바지랑대 때문에 더욱 올곧아지는

 

[2010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른다고 하였다' - 권지현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피워올리건 말건

나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연착한다는 안내표시등 한 줄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는 로비를 몇 바퀴나 돌고

하릴없이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마침내는 쪼그리고 앉아 지루하게 졸았다

항의하는 나를 마주한 공항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가야할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

비행기는 오지 않고

결리는 허리뼈를 아주 잊을 때까지 오지 않고

우루무치행 비행기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2010 문화일보>

 

골목의 각질  - 강윤미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 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자리의

1등성부터 5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처럼

구멍가게는 진부했다 속옷을 훔쳐가거나

창문을 엿보는 눈빛 덕분에

골목은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우리는 한데 모여 취업을 걱정하거나

청춘보다 비싼 방값에 대해 이야기했다

닭다리를 뜯으며 값싼 연애를 혐오했다

청춘이 재산이라고 말하는 주인집 아주머니 말씀

알아들었지만 모르고 싶었다

우리가 나눈 말들은 어디로 가 쌓이는지

궁금해지는 겨울 초입

문을 닫으면 고요보다 더 고요해지는 골목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인기척에 세를 내주다가

얼굴 없는 가족이 되기도 했다

전봇대, 우편함, 방문, 화장실까지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

자리에 붙어 있다 어쩌면

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  / 유병록

 

, 뚜껑을 따듯

오리의 목을 자르자 붉은 고무 대야에 더 붉은 피가 고인다

 

목이 잘린 줄도 모르고 두 발이 물갈퀴를 젓는다

습관의 힘으로 버티는 고통

곧 바닥날 안간힘

오리는 고무 대야의 벽을 타고 돈다

 

피를 밀어내는 저 피의 힘으로 한때 오리는 구름보다 높이 날았다

죽은 바람의 뼈를 고향으로 운구하거나

노을을 끌고 툰드라 지대를 횡단하기도 하였다

 

그런 날로 돌아가자고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더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피

 

날고 헤엄치고 걷게 하던 힘이 쏟아진다

숨과 울음이 오가던 구멍에서 비명처럼 쏟아진다

 

아니, 벌써 따뜻한 호수에 도착했나

발아래가 방금 전까지 제 안쪽을 흘러 다니던 뜨거운 기운인 줄 모르고

두 발은 계속 물갈퀴를 젓는데

조금씩 느려지는데

 

오래 쓴 연필처럼 뭉뚝한 부리가 붉은 호수에 떠 있는 흰 병을 바라본다

한때는 제 몸통이었던 물체를

붉은 잉크처럼 쏟아지는 내용물을 바라본다

 

길고 길었던 여정이 이처럼 간단히 요약된다니!

 

목 아래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발 담갔던 호수들을 차례로 떠올리는 오리는

목이 마르다

흰 병은 바닥난 듯 잠잠하지만

기울이면 그래도 몇 모금의 붉은 잉크가 더 쏟아질 것이다

 

[2010 전북일보 신춘문예-시 당선작 ]

 

먼지  -김혜원

 

1. 무게

체중계를 꺼내려다

나보다 먼저 올라앉은 먼지를 본다

저것도 무게라고 저울 위에 앉았을까

털어내는 순간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저 가뿐한 내공

내가 눈금처럼 꼼꼼히

몇 장의 졸업장과 얼마간의 통장으로

몸집 불리는 동안 너희는 세상을

깎고 갈고 부서지며 삭으며 살아왔구나

저울 위에 앉아 제 발자국 헤아리다가

세상 변두리 어디쯤 다시 찾아 날아올랐겠지

버려야만 이루어지는 저 가뿐한 무게

달 수조차 없는 그 삶에

문득 마음 무겁다

 

2. 높이

먼지도 세월을 견디면 높이를 갖는구나

어둠 속에서 말을 잊다보면 눈이 밝아지는 법, 나는

저 허름한 생의 목록을 다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양말이 벗어놓은 하품 바스러진 각질의 한숨 비틀대던 머리카락과 맥없이 흘러내리던 낡은 옷의 넋두리 나뒹굴던 보풀의 푸념 몇 낱 희미해진 거울의 깨진 비명도 몇 개,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뒷걸음쳐 이 구석 찾았을 게다

내일이 꼭 오리라 믿었을 그들

나는 오지 않은 날의 달력을 찢어

숨죽여 쌓인 어제의 높이를 가만히 들어 올린다

 

3.

차 안에 쌓이던 먼지

어느 날 흔적이 없어졌다

닦은 적도 없는데 저희끼리 뭉쳤다가

알갱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나 보다

어디든 다시 떠돌고만 싶은 것 같아

조심조심 발판을 걷어 밖에 뿌려준다

순간 바람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일제히 질주하는 저 하얀 맨발들

길이란 열망이란 얼마나 서늘한가

천 길 절벽은 허공에도 있어

지상으로 추락하여 얼룩지는 생이여

흙물이 제 지나온 길 가라앉히듯

빗물에 씻겨 다시 먼 길 떠나는구나

밤하늘에 담겨 반짝반짝 눈을 뜨는 별들도

떠나온 별을 찾아 몇억 광년 속으로

저렇게 먼지처럼 뛰어든다던데

나 이제 몇십 킬로의 동력을 켜고

내게 남은 시간의 벌판으로 달려간다

 

 [2010 강원일보 당선작-]

 

산부인과 41병동에서

 

김현숙  <춘천시 후평3>

 

목숨 걸고 터를 사수하려는 사람들과 강제 철거로 문책당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불길이 솟았다 강대병원 41병동 입원실에 누운 그녀의 마음도 이미 화염에 휩싸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가랑이 사이 좁고 음습하게 숨어있는 그를 찾아내 명명한 것은 D25, 20년 동안 빈방을 먹고 몸집을 키워 집채로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병실은 침묵의 섬, 형광 수족관 유리벽에 갇힌 여자는 영락없이 부레를 잃고 바닥까지 가라앉은 넙치가 되었다 TV는 밤낮없이 용산 강제철거 참사를 알리고 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불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제 철거는 내 깊은 동굴 속에서도 일어났다 마취 4시간 만에 피 주머니에 고인 D25는 몇 날 며칠 창자를 지나 억울하다고 빈터에서 울었다 화염에 휩싸여 죽은 용산참사 가족들이 TV 화면 속에서 실신했다 불을 낸 책임이 넙치라고 했다가 꽁치라고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랐다. 그녀의 몸이 점차 수족관이 되었다 밤마다 몸을 떠난 부레가 허공을 날고 납작하게 엎딘 시간들을 물고 사라지는 갈치 떼가 보였다 스산한 야광을 구경하는 관객은 네모난 아파트와 깜박이지 않는 붉은 십자가들뿐, 그런데 왜 십자가는 약자들의 빛이 되지 못할까 크레졸 안개가 어지러웠다 가끔 배를 움켜쥐고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은 투명한 해파리 촉수에 찔린 손을 높이 쳐들었다 의사는 여성을 잃은 대신 생명을 얻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D25를 죽이고 그녀가 산 수족관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장도 잃고 터도 뺏긴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신문이 말했다 그들에겐 죽을지언정 터를 지켜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불은 물대포로도 꺼지지 않는다 허공을 얻은 몸은 이미 바다가 되었을 테니.

 

*D25 : 여성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근종의 종류

 

2010 불교신문신춘문예 시·시조 당선작

 뼈의 기원  - 안병호

 

문득, 뼈가 시려오면

내 뼈의 아득한 시원을 찾아

눈과 바람의 길을 걸어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는 것이

대체로 나의 문명이지만

그것은 비석에 판각되거나 정의되어진 것만이 아닌

단단한 그 무엇이 내 속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과 말 속에도 뼈가 있다하고

문중의 아재 한 분은

바람조차 투명한 뼈를 지니고 있다하므로

뼈는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모든 족속은 그 조상으로부터

몇 개의 맑고 흰 뼈를 물려받아 사는 동안

또 한 생이 고요히 마감되는 것이다

뼈가 시릴 적엔 몇 모금 음복술로 덥히면서 오백년 전, 통정대부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삼십대에 무슨 사화로 졸()하신 당신, 처자식은 관노가 되고 그 때 당신의 눈물은 눈발이 되어 사방 백리까지 날렸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은 뼈마디마다 수수눈꽃을 피우면서 아버지와 저의 뼈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눈발 속에도 맑은 뼈가 있음을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가 졸()하시던 그 때처럼

아버지는 신발공장 공원에서 출발하여

생의 마지막 즈음 공사판 반장직에 올랐는데

젊은 나이에 병으로 졸()하셨다

그 때 아버지는 뼈만 남은 문양으로

어린 내 손을 꼭 잡은 채, 흐린 물기를 보였는데

물기는 뼈를 타고 흐르다 서서히 결빙되고 있었다

어린 나는 앙상한 뼈의 모습이

너무 무섭고도 생경해 입관 하던 날조차

차거운 뼈를 따습게 데우지 못했다

그 날에도 먼 곳에서부터 눈발이 날려 왔고

오래지 않아 강아지처럼 여린뼈를 가진

내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아버지, 오늘 밤 수북이 눈이 내립니다. 눈송이 송이마다엔 당신의 눈물이 담겨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북편에서 날리는 눈발에는 종가에 계자로 와 당신 집안은 절손 된 9대조 조부님의 눈물도 보입니다. 저와 아이는 오늘 같은 밤이면 뼈를 살포시 맞대고 세상을 꿈꿉니다. 그래서 눈 오시는 밤은 참으로 마음 따습습니다.”

뼈가 잘 맞물려서 사계절을 보냈다

펼쳐진 시간 속에서

나의 뼈는 좀 더 유연해지고

아이의 뼈는 좀 더 옹골차졌다

몸속의 뼈들을 가지런히 정돈하여

순하게 낮추는 오늘,

뼈마다 하얀 풀꽃이 피어난다

향불을 피우는데 음력 시월 을해(乙亥)

이른 눈이 축문과 함께 투명하게 날린다

기서유역氣序流易

상로기강霜露旣降

첨소봉영瞻掃封塋

불승감모不勝感慕

근이謹以

청작서수淸酌庶羞

지천세사祗薦歲事 ,

당신들께서는 하얗게 뿌려지는 눈으로 혹은 투명한 축문의 곡조로 살아오십니다. 맑은 눈발 속 나폴 나폴 떠다니는 어린 것이 또 다른 뼈의 기원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생이 다하는 날까지 뼈를 추스르며 어린 뼈를 돌보려합니다. 아이를 가만히 껴안아봅니다.”

 

 <2010년 경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차우차우  -김진기

 

사자개 차우차우

긴 갈기를 바람에 빗질하며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칠장사 참배객의 발길이 어스름을 따라 사라지고

스님의 독경 소리 어둠에 몸을 누이면

티베트에서 온 차우차우

몰래 경내를 빠져 나가 칠현산에 오른다

바라보면 멀리 눈 덮인 고향이 보인다

달라이라마가 포탈라 궁을 버리고 망명길에 오른 이후

그는 이곳으로 흘러왔다

호기심 어린 눈들이 발소리 지우면서 다가오면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듯

괜찮다 괜찮다 가벼이 꼬리 흔든다

꿈속에서나 만나는 그리운 히말라야 캄파라 패스를

이불처럼 두른 라싸 포탈라 궁

누가 구름 위에 백홍의 궁전을 지었나

돌아가는 마니차는 눈빛에 반짝이고 막 피어 올린 향내가

미로 같은 포탈라 경내를 적신다

얼어붙은 티베트 고원을 오체투지, 몇 달을 넘어온 장족이

다리를 질질 끌고 도착할 때마다

차우차우 맨발로 뛰어 나간다

고행을 먹고 사는 것인지

갈라터진 손바닥 무릎에서 흐르는 피, 내세의 제단에 올리면

신은 때때로 길을 비켜 준다

소문은 바람을 타고 먼저 왔는지

칠장사 차우차우가 도착하기 무섭게 라싸 차우차우들이 몰려나온다

부여잡고 얼굴 부비는 뭉클한 안부가 골목에 흥건하다

 

 [2010 한라문예 시 당선작]

 

장식장을 버리고  - 박찬의

 

장식장을 버렸습니다. 떨어져 덜컥이는 문짝을 청테이프로 길게 입막음 하고 동사무소에 들러 오천 원짜리 스티커를 사왔습니다. 저승길 노잣돈치곤 값싼 그 몸값이 안쓰러워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와의 이별에 매달립니다. 모서리를 밀치고 튀어나온 못이 허리를 꺾어 작별을 고합니다. 아내와 함께 시집와 십 여년, 그 사이 고장난 어깨가 삐걱거립니다. 긁히고 벗겨져나간 살점들과 아이들의 낙서자국,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몸은 뼈대만 앙상히 늙어갑니다. 그 안에 담아두었던 신혼의 이야기며 육아일기며 단란했던 한 가족의 앨범들. 그리움을 이야기하며 많은 날들을 지탱해온 가슴에 아쉬움이 복받쳐 오르고, 돌아오는 길 모처럼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넣었습니다. 당신의 신경통은 다 나았다 걱정마라하시며 혼자 있는 자식걱정에 마음 졸이시는 어머니. 밥은 제때 챙겨먹는지 빨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미국에 있는 아이들과 애 엄마는 잘 지내는지. 비워지지 않는 어머니의 걱정에 할 말 다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습관처럼 올려다보는 하늘. 아메리카로 가는 비행기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입니다.

 

 [경남신문 2010] 시 당선작

 

의 구둣방

이미화

 

발 끝에 달을 달고 저녁 강을 건너고 있는 허

구름처럼 떠돌았으므로 그의 생은

한쪽만 유난히 닳은 구두처럼 삐뚜름하다

그의 구두처럼 다 허물어져가는

옥봉동 산 1번지 아파트에

조등처럼 별이 걸릴 때 저녁하늘은

가난한 마을의 착한 지붕을 건너가면서

지상의 가장 낮은 바닥부터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이동전화기 판매점에 다니는 착한 처녀의

구두 뒷굽을 갈아 끼우던 허의 남루한 저녁에

잠깐 화사한 웃음이 번진다

이동식 컨테이너 박스에 맞춘 그의 굽은 등 뒤로

따각 따각 처녀의 발걸음이 이동전화기 전화 연결음으로 터진다

중심을 놓고 뒷굽을 맞춘 구두가 흔들린다

일용할 하루의 노동이 땀 내음 밴 구둣방을 넘보기도 하지만

늘 기우뚱 한쪽으로만 기우는 그의 세상에서

수선 중인 구두는

기운 없는 그의 한 쪽 무릎에서 완성되는 절망이 키운 꿈이다

다시 언제 그의 세상이 흔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구두 뒤축이나

밑창만으로 키워 놓은

환한 세상이 그에게선 자라고 있다

하나 둘 찾아와 박힌 별들의 뒷자리로 들던 그가

창문에 걸린 어둠을 후다닥 걷어내고

달빛 속에서 주춤거린다

볼이 넓고 우직한 신발 속 그의 한쪽 발이

나머지 발의 오늘을 타전한다

 

 [2010 대구매일 당선작/]

 

그녀의 골반  석류화 1969년 경북 성주 출생.

 

1

나비 꿈을 꾸고 엄마는 날 낳았다 흰 꿈, 엄마는 치마폭에 날 쓸어 담았다 커다란 모시나비, 손끝에 잡혔다가 분가루 묻어나갔다 날개 끝에 고인 몇 점 물방울무늬, 방문 밖으로 날았다 돌담에 피는 씀바귀꽃 그늘을 옮겨다녔다 나비 날개엔 먼지가 끼지 않았다 한 꿈, 계단 입구에서 두 날개 맞접고 오래 기도하고 있었다 환한 꿈, 나는 오래전 그녀의 골반을 통과한 나비였다.

 

2

초음파상 골반뼈는 하얀 나비 같았죠 그녀의 골반뼈에 종양이 생겼을 때 보았던 그 나비, 그러니까 그녀의 꺼먼 엉덩이살 안에 나비 날개가 굳어 있었던 거죠 나는 잘 벌어지지 않는 날개 사이로 미끄러져 나왔던 거죠 나도 작은 나비모양 엉덩이를 달고 나왔던 거죠 그러니까 그녀가 힘겹게 좌판에 쪼그리고 있었을 때, 날품팔이, 품앗이 할 때 그녀 속의 나비가 조금씩 앓고 있었던 거죠 이 지상 마지막까지 날고 있을 나비, 그러니까 내 속을 빠져나간 어린 나비는 지금 내 앞에서 폴짝폴짝 날아오르고 있는데요

 

[2010 국제신문] 시 당선작

 

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 박진규

 

달이 저 많은 사스레피나무 가는 가지마다

마른 솔잎들을 촘촘히 걸어놓았다 달빛인 양

지난 밤 바람에 우수수 쏟아진 그리움들

산책자들은 젖은 내면을 한 장씩 달빛에 태우며

만조처럼 차오른 심연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러면 이곳이 너무 단조가락이어서 탈이라는 듯

동해남부선 기차가 한바탕 지나간다

누가 알았으랴, 그 때마다 묵정밭의 무들이

허연 목을 내밀고 실뿌리로 흙을 움켜쥐었다는 것을

해국(海菊)은 왜 가파른 해변 언덕에만 다닥다닥 피었는지

아찔한 각도에서 빚어지는 어떤 황홀을 막 지나온 듯

연보라색 꽃잎들은 성한 것이 없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청사포 절벽을 떨며 기어갈 때

아슬아슬한 정착지를 떠나지 못한 무화과나무

잎을 몽땅 떨어뜨린 채 마지막 열매를 붙잡고 있다

그렇게 지쳐 다시 꽃 피는 것일까

누구나 문탠로드를 미끄덩하고 빠져나와 그믐처럼 시작한다

 

 문탠로드(Moontan Road)

대한팔경의 하나인 해운대 달맞이언덕에서 달빛의 기운을 받으며 산책을 즐길수 있도록 조성된 2.2의 산책로.

 

농민신문 당선작

조각보

신준수

 

 버려진 하천부지 고만고만한 뙈기밭 살붙이처럼 붙어있는데요 상추 파 쑥갓 고추 토마토 가지 시금치 얼갈이 오밀조밀 어깨 겨누고 있는 그게, 한 땀 한 땀 이어붙인 조각보입니다

 

꾸불텅꾸불텅 민달팽이

육필 선연한

푸진 밥상입니다

 

세상에 밥을 탐하는 것들

 

시장기 급한 여름이 확, 밥상보 걷어내듯 물길이 휩쓸고 간 지난해 덜 익은 것들 날것으로 쓸려간 밥상머리 몇 남은 건건이 일으켜 쿵쿵 지지대 박던 노인을 오늘 다시 봅니다

 

조심조심 밥물 맞추듯 푸성귀 매만지는 남루한 저 손길도 언제 쓸려갈지 모르는 밥상처럼 위태위태합니다

 

허겁지겁 허기 속으로 잦아든 초록의 밥상이나 초록에서 여물고 있는 씨앗들 묵정밭 같은 저 손에 다시 씨앗 떨굴지도 의문입니다

 

비어있는 밭이라야 다시 씨앗 묻을 수 있듯 가보지 않은 저쪽 어디 빈 밭을 점찍어 두었을지도 모르지요

 

맨 처음 고개 숙이고 나오던 물음표 같은 떡잎처럼

저 노인 구부정한 것이 새싹을 닮았습니다

곧 어느 곳으로든 옮겨질 모종처럼 말입니다

 

 

2010년 시조부문 신춘문예 당선작

 

2010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시조

 

, 혹은 목련  - 박해성

 

앙가슴 하얀 새가 허공 한 끝 끌고 가다

문득 멈춘 자리

매듭 스릇 풀린 고요

콕 콕 콕

잔가지마다 제 입김 불어넣는

 

그 눈빛 낯이 익어 한참 바라봤지만

난시가 깊어졌나,

이름도 잘 모르겠다

시간의

녹슨 파편이 낮달로 걸린 오후

 

은밀하게 징거맸던 앞섶 이냥 풀어놓고

곱하고 나누다가

소수점만 남은 봄 날

화르르!

깃 터는 목련, 빈손이 사뿐하다

 

 

[2010 서울신문 - 시조]

 

바람의 산란 /배경희

모든 것이 사라져도 바람은 존재한다

수천 년 살아있는 혼들의 화석처럼

떠돌며 우리의 삶 속에 잔뿌리를 내린다

 

당신은 허공 속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힘들고 지친 자들의 울음을 파먹으며

온몸을 먹구름 속에 수없이 휘어가며

 

밤새 비 쏟아지고 나무를 두드렸던

바람 새들 불러 모아 한바탕 쓸고 간

마당엔 햇살 물고기 푸륵푸륵 뛰논다

 

[매일신문 당선작/시조]

 

양두고(兩頭鼓) - 유현주

 

어우르던 장구가 더운 숨을 토한다

생사의 경계선을 이랑인 듯 넘어와

울음을 되새김하여 소리로 환생한 소

 

옹차던 속 들어 낸 여섯 치 오동나무에

조임줄로 다시 묶여 코 뚫림을 당할 땐

북면을 힘껏 조이며 공명통을 안는다

 

사포를 쇠 빗 삼아 쓸어주는 조롱목

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로 조율되고

긴장한 소릿결들이 평온하게 풀릴 즈음

 

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

열채로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자

덩더꿍, 변죽을 울리며 타령을 끌고 간다

 

2010 조선일보

콩나물 일기  조민희

 

 

하지 무렵 짧은 고요 어둠에 잠겨 든다.

별꽃 뜬 어둑새벽 그믐달과 살을 섞고

쟁쟁한 징소리 내며 두 손 밀어 올린다.

 

노굿이 날개 접고 지어가는 고치 속에

갇혔다 튕겨진 몸, 바람에 여위어 가고

이제는 못 삭힌 열망 갈증으로 남는다.

 

눈물로 녹여낼까? 꺼내어 든 물음표

외발로 등 기대고 소통의 문을 연다.

화들짝 개나리 피어 또 한 생이 열리고.

 

번잡한 영등포역 문 헐거운 국밥집에서

인력시장 줄 선 사내 빈속을 달래 주는

그렇게 열반에 든다, 누추한 시대 성자처럼

 

[2010 국제신문] 시조 당선작

찔레의 방  /오영민

 

 

병원 문을 나서다 하늘 올려다 본다

아기인 듯 품에 안긴 찔레 같은 어머니

기억의 매듭을 풀며 꽃잎 툭툭, 떨어지고

 

잔가시 오래도록 명치끝 겨누면서

수액 빠진 몸뚱이로 물구나무 서보라며

먼 바다 어느 끝으로 내몰리는 나를 본다

 

파도 끝 수평선은 붉은 줄 내리 긋고

굽 닳은 하루해가 출렁이다 멈춰 선 곳

익명의 불빛이 와서 꽃잎으로 흔들린다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아버지와 바다  - 조춘희

 

아버지,

수면을 두드리지 마세요

수평의 긴장을

간신히 지탱하는

해저의

섬과 섬 사이

안간힘을 보세요

 

아버지,

낚싯줄을 던지지 마세요

거멀못 박아둔 자리

새물이 차올라

파도는

푸른 비린내

바다를 토막내어요

 

아가야,

염려말고 바다를 보아라

달을 안고 뒤척이는

바다의 설렘을

지금 막

사랑을 품고

마음 붉어지는 찰나란다

 

 

[2010 부산일보]

해토머리 강가에서  / 김환수

 

갯버들 가장귀에 물구나무선 눈먼 햇살

풋잠 든 하얀 잎눈 이따금 들여다본다.

도톰한 봄의 실핏줄, 돋을새김 불거지고.

 

물비늘 풀어헤친 낯익은 수면 위로

명지바람 건듯 일어 빗살무늬 그려내고

웅크린 이른 봄날을 종종걸음 재우친다.

 

귓가에 기웃거리는 자갈밭 여울물 소리

백일 남짓 어린애가 옹알이하듯 재잘대고

산그늘 조금씩 끌어당겨 정수리를 덮고 있다.

 

몇 겹의 물굽이가 수만 번 날을 세워야

딱지 앉은 상처처럼 푸른 문신 새겨낼까

겨우내 숨죽인 강물, 접힌 허리 쭉쭉 편다.

 

[경상일보2010신춘문예]

 

5, 누에고치  - 이상선

 

할머니 지문 찍힌 뽕잎마다 이랑진 삶

넉 잠 든 잠실에 들면 반투명 누에들이

큰스님 넉넉한 손처럼 가진 것 죄 내줄 때.

 

이따금 명주실 같은 부드러운 바람결이

자디잔 물비늘을 은어 떼로 풀어놓고,

풀벌레 달빛 속에서 반짝반짝 울고 있다.

 

지는 꽃의 뒷등마냥 적막한 누에고치

길을 버린 누에들은 곡기마저 물리친다,

폭폭한 제 속울음도 다 퍼내지 못하고.

 

마분지 빛 흐린 날의 장막 한 겹 걷어낸다.

얼음 박힌 동치미국, 할머니 손맛 되새기며

시렁 위 채반에 올라 가만가만 숨 고른다.

 

호박벌은 귓전에서 풀무 소리 잉잉대고

가느스름 눈 뜬 채 장엄 열반 꽃 둥지 엮는,

한 살이 터억 매조지한 울 할머니 뒤태 같다

 

 2010 중앙신인문학상(시조부문)

 

겨울 폐차장  / 김대룡

 

길을 깁던 바퀴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수런대는 바람 사이 조등은 살을 깎고

겨울밤 몸을 부비는 수의 입은 일가의 산

 

맨 처음 어디에서 여기까지 온 것인가

지게차 꼬리 무는 운구 행렬 곡()도 없다

몸 눕힐 저 그늘 묏자리 망초꽃 다 내주고

 

늘 한 뼘씩 앞서려던 녹물 고인 도로 끝

슬관절 삐걱이며 게기판도 멈춰섰다

아버지, 잠의 집 끌고 그 산에 당도했을까

 

지상의 집들은 다 흔들리기 마련이지만

그래 그래 끄덕이며 사람들은 돌아가고

이제사 몸을 눕히는 용광로 속 등뼈 하나

 

2010 농민신문 시조당선작

 

숭어 뛰다  / 김봉집

 

 

청파래 배두렁이 비뚜름히 걸쳐 입고

선창이 벌렁 누워 선하품을 하고 있다

전마선 세찬 물결에 아침노을 뒤척이고

 

다시마도 미역귀도 숨이 가쁜 이 하루에

더러는 재두루미가 먹구름 물고 날지만

뒤덮인 적조(赤潮)의 띠가 황금어장 옭죈다

 

어느새 눈물이 맺힌 배다릿집 늙은 아재

덩어리져 식어가는 늦은 밥상 받아든다

헝클린 반백의 머리 소금버캐 열리고

 

바지선 엔진소리 결계(結界)를 푸는 안개

자린고비 어부 조 씨 짠 냄새만 거머쥐고

저 멀리 낭장망 너머 뛰는 숭어 겨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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