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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붓의 손가락

동암 구본홍 2022. 12. 3. 21:57

붓의 손가락

 

그림의 몸속에서 뼈가 자라고 있었다

희망이며 기다림의 미소 같은 흥분이었다

진열된 사각의 이마 위로 먼 시간 켜켜이 쌓인 색의 주름들이

차가운 가을빛처럼 사유의 반항같이 벽을 붙들고 서서

세계 밖으로 함부로 살아온 깡마른 정 끊어 모은다

벌과 나비가 환생한 공허 속의 공허

이젠 허공에다 귀를 기울이며 기다림 뿐

기다림 앞 빛으로 빚어 놓은 가족들

축축하게 소리 없이 자기 세계로 돌아간다

붙들지 못한 허기의 숟가락을 놓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그래 태양은 다시 내일 또 떠오르겠지

얼굴 없는 시간이 고개를 들어

창틀 넘어 잘 정돈된 가을빛 전시장을 바라본다

그 아주 깊숙이 숨겨 놓은 신의 외마디 같은

계절의 호흡으로 그려 놓은 화상의 몸속에

떨어져 날아가는 휘파람과 눈 맞춘다

마른 바닥, 남은 몇 가닥의 억새꽃들이 앙상한 뼈를 새우며

섬세하게 바람의 붓으로 서서히

테레민의 질서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나의 묵도로 비틀어 새우던 그 힘 한 번쯤

뜨거운 피 자연의 빛에 젖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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