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붓의 손가락 본문
붓의 손가락
그림의 몸속에서 뼈가 자라고 있었다
희망이며 기다림의 미소 같은 흥분이었다
진열된 사각의 이마 위로 먼 시간 켜켜이 쌓인 색의 주름들이
차가운 가을빛처럼 사유의 반항같이 벽을 붙들고 서서
세계 밖으로 함부로 살아온 깡마른 정 끊어 모은다
벌과 나비가 환생한 공허 속의 공허
이젠 허공에다 귀를 기울이며 기다림 뿐
기다림 앞 빛으로 빚어 놓은 가족들
축축하게 소리 없이 자기 세계로 돌아간다
붙들지 못한 허기의 숟가락을 놓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그래 태양은 다시 내일 또 떠오르겠지
얼굴 없는 시간이 고개를 들어
창틀 넘어 잘 정돈된 가을빛 전시장을 바라본다
그 아주 깊숙이 숨겨 놓은 신의 외마디 같은
계절의 호흡으로 그려 놓은 화상의 몸속에
떨어져 날아가는 휘파람과 눈 맞춘다
마른 바닥, 남은 몇 가닥의 억새꽃들이 앙상한 뼈를 새우며
섬세하게 바람의 붓으로 서서히
테레민의 질서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나의 묵도로 비틀어 새우던 그 힘 한 번쯤
뜨거운 피 자연의 빛에 젖을 수 있을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