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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지상의 마지막 꿈

동암 구본홍 2023. 7. 30. 07:48

지상의 마지막 꿈

 

구본홍

 

 

붉은 벽돌담 버팀목 삼아 볕살 문을 열고

등이 굽은 노인을 내려놓고 있는

목2동 514-11번지

 

밤빛 얼굴 볕살 안으로 구겨 넣고

무겁던 발걸음 앙알거림 달래는 파지의 무게

질곡의 맷돌에 한쪽 길 갈아 눕히던 등 휜 삶

가난의 업보 차가운 공기로 헹구어 낼수록

땀 절인 손바닥 모래알처럼 들러붙어 서걱인다

 

옆구리에 차고 있던 이빨 빠진 가위와 검은 비닐봉지

난관 難關을 자르고 자른 것을 담고

그것을 풀어 이름 붙일 수 없는 그것 눌러 눕히고

가치만큼의 가치로 싹둑싹둑 잘려나간 시간

겹겹 뼛속 깊이 가난의 촉수 겹눈처럼 새긴

너들 너들 떨어진 날들

내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던 것처럼

삶은 난관 難關의 뼈들로 쌓인 감옥이다

수레바퀴 회전의 수만큼 쌓여가는 냉혹한 굴곡의 길

뽑아 낼 수 없는 삶 앞에

마지막 꿈을 끌고 가는 굳은 손

 

저 굴곡의 문을 열면 헝클어져 옹이진 가난들

사기그릇처럼 깨뜨릴 수 있을까

죽은 뼈의 나무들이 다시 푸른 생명 잉태하듯

머문 시간 위로 잃어버린 순간 초침처럼 돌아가고 있다

새벽을 피워가던 수레바퀴 파문 차갑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나를 뒤따르며 흔드는

그때도 지금도 차가운 파도처럼 출렁이는

생의 늪지대 지상의 가난의 폐부 肺腑를 찌르는 노인

붙잡으려 해도 붙잡히지 않는

수많은 빛이 될 때까지 삶을 엮는 눈빛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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