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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늦여름 얼굴, 당신

동암 구본홍 2023. 8. 5. 09:25

늦여름 얼굴

 

솜털 세우는 당신
저녁이면 이젠 차가운 손으로

드르륵 문 열고 들어서는 군요
온몸 던져 싸우는 암 병동

절박한 희망 보듬던 따뜻한 손이었던
한때는 탱탱했던 당신

박 꼭지처럼 말라 가는군요
차갑게 식어가는 당신의 마음 아싹 씹으면
구멍 난 호주머니에서

움츠린 깃털들이 흘러내려요
발톱 새운 발걸음마다

풀 벌레 소리 가지런히 눕고
창가 찰찰 한 밤바람 소리 따라
밤사이 비워진 병상

꾸겨진 홑이불마저 설렁해요
핏빛 잃은 육골 그 체온  
당신의 큰 사랑의 그 속에 들 수 있나요
키다리 수수밭도 고개 숙이네요
축 처진 어깨 위로

진록의 잎들이 아슬아슬 떨고 있군요
세상의 가파랐던 길 바라보던

암 병동 열린 창밖
무거운 몸 끌고 서쪽으로 가는
오리 목도 너도밤나무도

깊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아물지 않은 상처 다독이고 있어요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무덤가
달맞이꽃 노란 입술 여닫으며
씨앗 하나 쓸쓸히 떨구는 이쯤
얇은 온기 따라 으악 골 넘으러

홀씨 하나 구름 함께 가고 있네요
뜨겁게 그린 수채화 빛바래가요
활시위처럼 직간들이 소슬히

허공으로 당겨지고 있어요
당신의 가슴에 새긴 노을 문신 속에서
한 세상 흔들리다

먼저 간 영혼의 새때들
가파른 뫼 등 가림 빛에 감추고
당신은 날개도 없이 가볍게 넘어가고 있군요
말 없이 떠나는 당신의 걸음
이때쯤엔 서슴없이 언제나

먼저 지는 몇 송이 꽃들이 있어요

까마귀 노래 왠지 슬피 들려요
당신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그리고
쓸쓸함도 바스스 바스스 갈잎에 묻고 가시나요
그의 몸에 내린 갈 빛 뿌리가 깊어요
치유治癒할 수 없었나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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