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당신 옷 벗고 누워요 본문
당신 옷 벗고 누워요
당신, 옷 벗고
당신의 몸은 건천乾川 침대 위에 누워요
흩트려진 지난 삶의 얼룩
내가 설거지할게요
비빔밥처럼 엉킨 오래된 녹슨 앙금
세월의 행주로 닦아내고
당신 그 고왔던 피부 빛바래가지만
거울처럼 맑은 당신 마음 위로
튤립 꽃무늬로 덮어 드릴게요
이빨 빠진 뚝배기처럼
당신 오른손 엄지 아리던 손톱
삶의 도마 위에 남겨진 지문들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균열 진 살점 하나 귀 열 수 없어요
생의 식탁 위에 불빛
수런대는 그 생의 파편 불러 새워도
위태롭게 끓어 넘던 뇌혈관의 뾰루지
옆머리 헛된 예언 같은 바코드를 새긴 흉터에서
소용없이 어리석게도 불꽃만 원망하고 있어요
당신의 몸은 가을 잎 당신, 옷 벗고 누워요
내가 설거지할게요
죽기 전에 돌려놓아야 할 앙금의 각도 영으로 맞추고
밤마다 핏줄 따라 흘러온 내 독성 헹구어
어두워진 주위를 닦아 당신 앞에서 휘어진 생 말리고 싶어요
밥상에 앉아 편안히 받아먹던 일이 이젠 가슴앓이 되었어요
되감아 말며 죽처럼 보글보글 끓는 생의 부엌
당신이 솥이라면 나는 불꽃이 되고 싶었던 세월
그저 말없이 가문비나무처럼 한세월 서서 기다려 준 당신
이젠, 내가 삶의 모서리들 설거지할게요
당신, 당신 몸은 천둥소리 이젠 옷 벗고 누워요
따뜻한 마음으로 덮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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