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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달콤한 저녁이었어요

동암 구본홍 2022. 11. 15. 22:37

달콤한 저녁이었어요.

 

 

 

세월로 수확한 나이 깡소주로 누르고 앉은 늙으신 네 구멍가게 앞

눈가에 졸음 겹겹 앉은 슈퍼 아주머니 힘든 저녁답

삐딱한 천막들이 다투며 머리 내민

한산閑散한 골목 저잣거리 지나

마른 침 혓바닥 핥으며, 마트에 가요

 

쇼핑 일기예보 호주머니에 꼭꼭 접어 넣는 아내

손때 묻은 쌈짓돈 몇 장 몸 도사리는 데요

요즘 애호박까지 고개 들고 무게 잡는 데요

들었다 놓았다 고개 갸우뚱 씽씽한 푸성귀 진열대 앞

향내 짙은 잘 익은 햇과일들이 앞다투며 고개 쳐들고 아우성인 데요

마누라 눈 돌리는 심사深思 앞에 내가 좋아하는 수박 한 통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장보기인데요, 당신

직립으로 꽂히는 유혹 칼로 베듯 뿌리쳐 보셨나요

발품으로도 고르지 못한 몰입의 긴장 무거워 지면 굴복시키는 데요

계산대 앞에 서면 아내는 고민 아삭아삭 씹는 데요

늘 경험 하는 일이지만요

가치를 저울질하는 동안

손끝으로 꾹꾹 눌러보는 단맛의 유혹

흰 달콤이 한 봉지 내려놓는 데요

단맛 나는 마음을 채운 장바구니 무게 의심하지 마세요

절제하고 절제하며 장을 봤어도 더 줄일 물건이 있나 봐요

살까 말까 망설이는 아내의 모습

처음엔 궁색스럽게 보였던 나는 숙연肅然히 마음 앉혀 보지만요

기억의 망 벗어나지 못하는 되살아나는 기억

어머니 장에 갔다 돌아오실 적에

볏짚 오라기로 간절인 갈치 한 마리 허리 꺾어 들고 오시던 생각

더 깊이 요동치는 데요

마누라 모습이 곧 우리를 키웠던 어머니 모습 같아요

헐렁한 지갑 꺼내는 아내의 모습 앞에

뜨거워지는 내 눈구덩이가 부끄럽게 감빛처럼 붉어져요

 

산 물건 유심히 눈 여겨봐요

번드레 윤기 새우던 젊은 한철 스쳐 지나가요

대형 마트 앞 널브러져 있는 빈 병들이 민망스럽게 쳐다봐요

쪼개고 또 쪼개고 할당한 생활비 쓰는데도 인색한 아내이지만요

가정의 대소사엔 아끼고 또 아껴두었던 목돈 내놓는

여보세요,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라 하지 마세요

 

나는 잠들기 전 아내의 마음 끄집어내어 깨물어봐요

이 저녁에도 달콤한 맛 입안에서 감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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