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달콤한 저녁이었어요 본문
달콤한 저녁이었어요.
세월로 수확한 나이 깡소주로 누르고 앉은 늙으신 네 구멍가게 앞
눈가에 졸음 겹겹 앉은 슈퍼 아주머니 힘든 저녁답
삐딱한 천막들이 다투며 머리 내민
한산閑散한 골목 저잣거리 지나
마른 침 혓바닥 핥으며, 마트에 가요
쇼핑 일기예보 호주머니에 꼭꼭 접어 넣는 아내
손때 묻은 쌈짓돈 몇 장 몸 도사리는 데요
요즘 애호박까지 고개 들고 무게 잡는 데요
들었다 놓았다 고개 갸우뚱 씽씽한 푸성귀 진열대 앞
향내 짙은 잘 익은 햇과일들이 앞다투며 고개 쳐들고 아우성인 데요
마누라 눈 돌리는 심사深思 앞에 내가 좋아하는 수박 한 통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장보기인데요, 당신
직립으로 꽂히는 유혹 칼로 베듯 뿌리쳐 보셨나요
발품으로도 고르지 못한 몰입의 긴장 무거워 지면 굴복시키는 데요
계산대 앞에 서면 아내는 고민 아삭아삭 씹는 데요
늘 경험 하는 일이지만요
가치를 저울질하는 동안
손끝으로 꾹꾹 눌러보는 단맛의 유혹
흰 달콤이 한 봉지 내려놓는 데요
단맛 나는 마음을 채운 장바구니 무게 의심하지 마세요
절제하고 절제하며 장을 봤어도 더 줄일 물건이 있나 봐요
살까 말까 망설이는 아내의 모습
처음엔 궁색스럽게 보였던 나는 숙연肅然히 마음 앉혀 보지만요
기억의 망 벗어나지 못하는 되살아나는 기억
어머니 장에 갔다 돌아오실 적에
볏짚 오라기로 간절인 갈치 한 마리 허리 꺾어 들고 오시던 생각
더 깊이 요동치는 데요
마누라 모습이 곧 우리를 키웠던 어머니 모습 같아요
헐렁한 지갑 꺼내는 아내의 모습 앞에
뜨거워지는 내 눈구덩이가 부끄럽게 감빛처럼 붉어져요
산 물건 유심히 눈 여겨봐요
번드레 윤기 새우던 젊은 한철 스쳐 지나가요
대형 마트 앞 널브러져 있는 빈 병들이 민망스럽게 쳐다봐요
쪼개고 또 쪼개고 할당한 생활비 쓰는데도 인색한 아내이지만요
가정의 대소사엔 아끼고 또 아껴두었던 목돈 내놓는
여보세요,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라 하지 마세요
나는 잠들기 전 아내의 마음 끄집어내어 깨물어봐요
이 저녁에도 달콤한 맛 입안에서 감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