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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詩 모음

봄비가 올 때면

동암 구본홍 2022. 12. 18. 16:40

봄비가 올 때면/동암

 

도시의 마음 슬퍼 보일 땐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빗방울들은 바람의 앓는 소리엔 관심조차 없었다

만장처럼 펄럭이던 나뭇잎들은

새 울음소리를 흠뻑 적시고 있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물기 머금은 기왓장들은 비늘처럼 번들거리고

우산 받쳐 들고 가는 발걸음은

무겁던 습기 털어 내며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와

복잡한 도시의 내부 속으로 흡입되고 있다

높은 건물 안에서는 마우스를 옮겨가며

아직 인화되지 않은 꿈들을 복사하지만

축축해지는 꿈들이 강물처럼 불어 오른다

처마에 끝에 맺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한때의 울음소리처럼 슬프다

식은 밥사발에 고향의 흙냄새가 흥건하다

고향에도 비가 내리고 있을까

어린 시절 기억하고 있을 봄비 소리에서

검은 고무신 발소리가 들린다

풍요가 만찬이어도 비 오는 날이면

꼬들꼬들 말라가는 달고 쓴 기억 되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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