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636)
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지는 달과 뜨는 해을 보다 언젠가 멈춰버린 뻐꾸기시계 묵은 먼지만 덮어쓴 채 시침과 분침의 회전 그 그늘 깊이로 한 해가 저물 때 기대치의 수치처럼 반쯤 남은 커피 잔은 책상위에서 졸고 있고 어느 서실 노파의 굽은 등 허리처럼 삐걱삐걱 소리 내던 나무의자는 방향을 잃은 채 말이 없다 언젠가 일궈야 할 무두질로 앓던 나의 체취 가득한 자리 위에 낙엽처럼 쓰다 버린 화선지가 어지럽게 들어 누워있다 새해 아침 그래도 소리 없이 신록 같은 맑은 해가 떠오르고 나는 다시 뻐꾸기시계 태엽을 감는다 우리집 행운 목 꽃망울이 뾰족 보인다 2010년 1월 1일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풀터가이스트( 불안정하게 소란을 피우는 영(靈) 성은주 하늘은 별을 출산해 놓고 천, 천, 히 잠드네 둥근 시간을 돌아 나에게 손님이 찾아왔어 동구나무처럼 서 있다가 숨 찾아 우주를 떠돌던 시선은 나를 더듬기 시작하네 씽끗, 웃다 달아나 종이 인형과 가볍게 탭댄스를 추지 그들은 의자며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고 가끔, 열쇠를 집어삼켜 버리지 그럴 때마다 나는 침대 밑에서 울곤 해 스스로 문이 열리거나 노크 소리가 들릴 때 화장실 문은 물큰물큰 삐걱대며 겁을 주기도 해 과대망상은 공중으로 나를 번쩍 들어 올리지 끊임없이 눈앞에서 주변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조였다 풀어져 골치 아픈 그들의 소행에 시달리다 못해 어느 날, 광대를 찾아갔지 광대는 자신이 두꺼운 화장에 사육당하고 있..
소주 한잔하고 싶어진 따뜻한 저녁이네요 어 성이던 모서리 달빛 묻어오는 저녁때 삐딱한 천막들이 앞다투며 머리 내민 골목 저잣거리 지나 마트에 가요 쇼핑 일기예보 손에 꼭꼭 접은 아내 두리번두리번 생각들이 뜨거워져요 요즘 애호박까지 고개 들고 폼 잡는 데요 들었다 놓았다 고개 갸우뚱 싱싱한 푸성귀 진열대 앞 향내 짙은 잘 익은 햇과일들이 앞다투며 고개 쳐들고 아우성이네요 아내의 심사 深思 앞에,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장보기인데요, 당신 직립으로 꽂히는 유혹 칼로 베듯 뿌리쳐 보셨나요 발품으로도 고르지 못한 몰입의 긴장 계산대 앞에 선 아내는 고민 아삭아삭 씹어 봐요 늘 경험 하는 일이지만요 아내는 넘치는 무게 내려놓는 데요 마음 채운 장바구니 무게 의심하지 마세요 절제하고 절제하며 장을 봤어도 더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