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흔적 본문
흔적/동암
지난 폭우의 고통으로 흰 이빨 드러낸
꺾인 나뭇등걸 자벌레 바쁘게 몸을 재고
떨어진 마른 잎들이 수의처럼 입혀질 때
숲속엔 소리 없이 장례가 진행되고 있었다
몇 가닥 남은 혈류에 햇살의 칼날 닿자마자
스스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몸 누이는 나무,
진즉에 고통 덜어주었어야 했던
허리뼈를 탈골 시킨 나무들이
염을 하듯 나뭇등걸을 어루만지고
몸을 타고 오르던 보랏빛 칡꽃 넝쿨은
거친 숨 내뱉으며
천형을 온몸으로 밀어내고 있다
그리고 상여 매듯 어깨에 메고
숲을 급히 빠져나간 물줄기 흘러간 자국마다
드디어 생의 이력만 둥글게
묘비처럼 남은 밑동
불구의 몸 환상통 앓았던 흔적의 고통
굳은 각질로 떨어져 있고
그동안 수없이 허공에 산란한 잎들은
조문하러 다녀간 듯
공중 핑그르르 돌다 몇 잎
살포시 엎드렸다. 주춤주춤 물러난다
숲의 변방에서 불구의 시간 견디고
떠나 비어버린 둥근 허공에 찍힌
방점 사이로 칙칙하고 습한 시간
헹구며 바람이 다녀간다
이빨 자국 선명한 능선에
소복의 나무들이
슬픈 그늘 한 뺌 두 뺌 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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