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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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낙서 방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동암 구본홍 2023. 8. 17. 08:57

[2007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정상혁

'활'하고 무사처럼 차분히 발음하면
입 안의 뼈들이 벼린 날처럼 번뜩이고
사방은 시위 당겨져 끊어질 듯 팽팽하다

가만히 입천장에 감겨오는 혀처럼
부드럽게 긴장하는 단어의 마디마디
매복한 자객단처럼 숨죽인 채 호젓하다

쏠 준비를 하는 순간 모든 게 과녁이다
호흡 없던 장면들을 노루처럼 달리게 하는
활활활 타오르게 하는 날쌔고 깊은 울림

허공의 누군가가 '활'하고 발음했는지
별빛이 벌써부터 새벽을 담 넘어가
내일로 촉을 세운 채 쏜살같이 내달린다

[당선소감]
"채우고 채워 스스로 빛나는 사람 되겠다"


방 안에 앉아 창가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날씨가 참 좋았다. 순간순간 햇빛을 받은 먼지가 소행성처럼 빛났다. 그리고 이제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하자면, 아직 한참 모자라다. 무지 작고 가볍다. 이 어마어마한 우주에 그냥 사람 크기 정도의 먼지일 뿐이다. 완성된 세계를 가지려면 얼마를 더 힘써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짜잔, 등장하는 햇빛처럼 멋진 옷을 입혀주신 중앙일보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잠깐의 눈부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열심히 고민하며 살아가겠다. 채우고 채워서 스스로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부모님,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약력=▶1986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과 2년 휴학 ▶경기 용인소방서 의무소방대원 복무중

[심사평]
팽팽한 긴장감 가득한 '수작'


중앙신인문학상은 치열한 경합으로 유명하다. 월 백일장을 통과하며 갈고 닦은 실력을 연말에 다시 경쟁한 끝에 인정받는 상이기 때문이다. 올해 당선작 ‘활’은 그 과정에서 드물게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를 얻은 수작이다. 시적 발상이나 언어 감각, 이미지 처리 능력이 뛰어나고 신선하다. ‘활’을 이만한 상상력과 조형력으로 그려내기란 쉽지 않다. 정상혁 씨는 이제 ‘쏠 준비를 하는 순간 모든 게 과녁’이라는 자신의 시구를 보여줄 수 있는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부디 ‘팽팽’하고 ‘깊은 울림’이 ‘활활활 타오르’는 명중 이상의 작품들을 쏘아주기 바란다.

함께 논한 김남규·김대룡·송유나·연선옥·이서원씨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그러나 시적 발상과 이미지 면에서 참신성 혹은 완성도가 당선작에 못 미쳤다. 무엇보다 고답적이거나 공소한 내용, 부자연스러운 율격 등이 넘어야 할 과제인 듯싶다. 신인일수록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 절실하다.<심사위원 : 유재영·김영재·이정환·이지엽·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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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눈길을 걷다

이서원 

앞 서간 어머니의 가슴 아린 발자국 길
혼자서 더듬더듬 그믐밤 걸어간다
눈 내린 책갈피에도 무릎 꺾어 세우며

손끝에 힘을 모아 온몸으로 읽는 음절
어두운 마음속을 뇌문(雷紋)처럼 뻗어 와서
하나둘 놓는 징검돌 꽃이 되어 피는데…

점자가 등불이라면 손끝은 눈동자인 것
애벌레 기어가듯 느릿한 보행 끝에
아득히 잔돌들 박힌 길 하나가 열려온다

[당선소감]

길고도 어두운 길을 밤새 걸어온 탓이었던가? 오늘 아침 햇살은 유난히도 눈이 부셨다. 한 걸음을 떼어놓다 말고 돌아보았다. 지난 저녁은 지친 노동의 어깨 위로 슬며시 웃으며 어서 가라고 손짓을 했다. 잠결인듯 꿈결인듯 흔들어 깨우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려는데 전화로 당선소식이 전해왔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조 하나를 붙들고 오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았던 까닭은 바로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 때문이었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날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좁쌀보다 작게 도드라진 숫자 위에 찍힌 점자를 눈감고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 작은 곳에 온 신경을 모으고 읽으려 했었지만, 그것마저도 간절하지 않았던지 매번 14층 내 집 앞을 놓치곤 했다. 촉각은 시각보다, 시각은 마음의 눈보다 더 어둡고 깜깜했었던 모양이다. 이제 온 신경을 다시 모아 불혹의 새날 앞에서 남은 점자들을 읽어내려 한다.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고교 시절의 은사 조동화 선생님, 박숙희 선생님, 그리고 형산문학회 친구들, 초록숲 동인들, 사랑하는 부모님과 아내 은미, 두 아들 동규, 동형이와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끝으로 오늘의 시작이 곧 멀고도 새로운 공간 속으로 밀어냄임을 알고 그 길을 끝까지 힘차게 달려가려 한다.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삼가 머리 숙여 큰 절 올린다.

1969년 경주 안강 출생. 계명문화대학 사진영상학과 졸업. 제7회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장원. 울산 산업문화축제 공모 최우수상. 제27회 전국근로자 문학상. 공단문학회, 초록숲 동인. 울산 현대자동차(주) 근무.

[심사평]
긴장감 + 신선함 높은 점수


300여 편의 작품 중 박미자의 '겨울 강구항', 이민아의 '신문을, 산다', 김형태의 '봉숭아', 이서원의 '눈길을 걷다'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박미자는 시조의 맛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유연한 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메시지가 너무 약하고 새롭지 않다는 결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민아의 경우 한자투의 단어를 쉽게 작품에 활용하는 점, 작품이 고르지 않다는 점이 눈에 걸렸다. 그런 결점이 없었다면 '신문을, 산다'는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가작이다. 김형태의 '봉숭아'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서정시다. 그러나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이 작자의 능력에 의문을 갖게 했다. 언어의 절제 면에서 특히 그러했다.

이서원은 적지 않은 미덕을 가진 시인이다. 투고작이 시문장의 생명인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하고 있고, 언어들이 시조라는 형식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아울러 신선함도 지니고 있었다. 당선작으로 정한 '눈길을 걷다'는 시각 장애인의 독서과정을 아프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환치해 놓았다. 특히 그 이미지들이 작자의 깨달음이라는 심적 변화에 까지 닿아있다. 주저없이 당선작으로 민다. 대성하길 바란다. <심사 : 이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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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
-‘오베르’**에서 보내온 고흐의 편지
임채성  

윤오월 밑그림은 늘, 눅눅한 먹빛이다

노란 물감 풀린 들녘 이랑마다 눈부신데

그 많던 사이프러스 다 어디로 가 버렸나

소리가 죽은 귀엔 바람조차 머물지 않고

갸웃한 이젤 틈에 이따금 걸리는 햇살

더께 진 무채색 삶은 덧칠로도 감출 수 없네

폭풍이 오려는가, 무겁게 드리운 하늘

까마귀도 버거운지 몸 낮춰 날고 있다

화판 속 길은 세 줄기, 또 발목이 저려온다

모든 것이 떠나든 남든 내겐 아직 붓이 있고

하늘갓 지평 끝에 흰 구름 막을 걷을 때

비로소 소실점 너머 한뉘가 새로 열린다

/ci0009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유화그림.

**오베르 쉬르 와즈:파리 북쪽의 시골마을.‘생레미’의 정신병원을 퇴원한 고흐가 약 두 달간 살다가 죽은 마지막 정착지로 그의 무덤이 있다.

[당선소감]
“이제부터 문학적 완성 위한 시쓰기의 길 시작”


한려수도의 본령인 남해(郡)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닷길로 이어지는 국도가 있습니다.3번국도. 지금은 ‘창선∼삼천포대교’라는 국내 최장의 연륙교가 바닷길을 대신해 주고 있지만, 이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배를 타야만 차도 사람도 그 길을 지나다닐 수 있었습니다. 바닷가에 다다르면 길은 일순 끊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바다 속으로 그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선이라는 소식을 접한 저는 지금 바로 그 3번국도의 끝에 서 있습니다.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고된 습작의 길은 오늘로서 끝났지만, 보다 큰 문학적 완성을 위한 시쓰기의 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바다 위 점선으로만 존재하던 그 국도의 일부는 이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아직도 제 눈 앞에는 그 길이 선명하게 살아 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또 시작된다는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저는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나야 합니다. 다시 손 떨리는 긴장감으로, 내가 서 있는 곳이 가야 할 길의 끝이 아니기에 한껏 풀어진 들메끈을 새롭게 조여 매고 있습니다.

시조라는 큰 바다로 입문을 허락하신 서울신문과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의 큰 절 올립니다. 오늘의 당선 통보는 잘했다는 박수의 의미가 아니라 더 잘하라는 매운 회초리로 알아 듣겠습니다. 아울러 심사위원께서 고르신 이 작은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나길 지속적인 관심으로 계속 지켜봐 주시길 감히 청해 올립니다.

그동안 곁에서 말없이 보살펴 준 아내와 시조라는 틀을 잡아주시고 이끌어주신 윤금초 선생님, 민족시사관학교 선배 문우들께 오늘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나를 알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도록 쉬지 않고 걸어가겠다는 다짐으로 영광된 이 자리의 인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 약력 *1967년 경남 남해 출생 *1987년 창선종합고 졸업 *1994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심사평]
시공 넘나드는 붓놀림 뛰어나


새 아침의 언어가 신설처럼 차고 희다. 현대시조 100년을 넘어서면서 신인들이 내딛는 발걸음도 한결 더 빨라지고 있다. 시조가 신춘문예를 만나서 불꽃을 피우며 새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이 당선후보작으로 고른 10편 가운데서 ‘무동도’(배우준),‘빈 의자 우화(羽化)를 꿈꾸다’(정행년),‘낡음에 대한 사색’(송필국),‘빙판’(김용채),‘까마귀가 나는 밀밭’(임채성)의 5편으로 다시 좁혀서 읽기를 거듭했다.  

‘무동도’는 부제 ‘김홍도를 찾아서’가 나타내듯 단원의 그림을 보고 신명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으나 시가 그림을 뛰어넘지 못했으며 ‘빈 의자 우화(羽化)를 꿈꾸다’는 착상은 좋으나 추상성에 매달려 주제의식이 묻혔으며 ‘낡음에 대한 사색’은 ‘채미정에서’의 부제가 말하듯 고려유신 길재가 조선조 건국을 탄핵하고 금오산에 은거하던 사실(史實)을 다루고 있으나 길재의 저 올연한 정신세계의 재현이 미흡했고 ‘빙판’은 시상의 폭이 단조로워서 감도의 깊이와 넓이에서 못 미치었다.

당선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부제가 보여주듯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서 그의 생애와 정신을 시로 퍼올리고 있다. 사람의 생애나 예술세계를 시로 재구성할 때 자칫 빠지기 쉬운 시각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붓놀림이 훨훨 날고 있다. 특히 ‘비로소 소실점 너머 한 뉘가 새로 열린다’는 결구(結句)에서 오래도록 인류 앞에 타오를 한 예술가의 혼불이 펄럭이고 있다. 부디 시조의 내일을 열어주기 바란다.(이근배·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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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염전에서
김남규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
뒤축의 무게로 새벽 수차를 돌린다
바람은 빈 가슴 지나 먼 바다를 일으키고

지친 오후 밀어내고 살풋 잠이 들자
잠귀 밝은 수평선 해류 따라 뒤척이며
뒤틀린 창고 이음새, 덴가슴도 삐걱인다

남편은 태풍 매미에 귀항하지 못했다
소금기 절은 목숨 몇 잔 술로 달랠 때
눈시울 노을로 번져 잦아드는 썰물빛

설움으로 풍화된 닻 말없이 내려두고
무명의 소금봉분, 메다 꽂힌 삽자루여
가슴엔 뱃고동 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

[당선소감]
시조로 소외된 사람들 어루만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5년 전이었습니다. 대학교 중간고사 대체로 나간 시조백일장에서 난생 처음 쓴 시조로 우연히 상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습작하고 있는 시조는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어쩌면, 시가 스스로 걸어서 제게로 온 듯합니다. 밤마다 수없이 울음을 삼켜가며 수십 번, 아니 수천 번 포기를 생각했었지만, 이제야 왜 제게 시조가 걸어왔는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날의 힘겨움을 시조로 이겨내라는 이지엽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가진 자와 강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역사라면, 못가진 자와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선생님께서 늘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감히 소외된 자를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며 지금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자의 아픔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소중한 작업이 그들에게 뜨끈한 밥 한공기 되진 못해도, 그들을 기억하는 눈물 한 방울은 될 수 있으리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봅니다.

저에게 문학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경기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님들과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그리고 제가 이 땅에 굳건히 서있을 수 있게 해주는 가족들과 이지엽 선생님,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광을 돌리며, 끝으로 아직 너무나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1982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
▲2003년 제 4회 전국 가사·시조 창작공모전 일반부 우수상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년 재학중

심사평
빈틈 없는 구성… 시적 감도 높여줘


새벽의 언어를 캐기 위하여 밤을 밝혀온 생각들이 시조의 높은 가락을 뽑아 올리고 있다. 신춘문예의 벽을 오르기 위해 모국어의 틀 속에서 오늘의 삶을 깎고 다듬는 손길들이 섬세하고 맵차다. 더욱 반가운 것은 응모작품들이 거의 고른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음이다. 시조가 지니고 있는 시적 구성요소를 잘 체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자재롭게 글감을 찾고 거기 맞는 가락을 짜내는 일에도 능숙한 작품들이 많았다.

‘염전에서’(김남규), ‘눈속의 새’(황성곤), ‘그 해 겨울 갯벌에서(송이나), ‘감나무 합창’(한을비), ‘풀씨이야기’(유순덕), ‘겨울 쑥부쟁이’(임채성)등이 마지막까지 밀고 당기었다.

‘눈속의 새’는 새 맛내기로는 단연 앞섰다. 그러나 관념의 과잉이 의미의 실상을 보여주는 데는 미흡했다. ‘그 해 겨울 갯벌에서’는 우선 제목이 주는 추상성이 걸린다. “그 해 겨울”이면 “갯벌”의 지명도 따라야 하지 않을까? 평시조의 시행을 산문형으로 이어나간 것도 거슬렸다. ‘감나무 합창’은 너무 정직하게 형식미를 지킨 것이 오히려 시를 답답하게 가두고 있다. 시조의 형식은 고체가 아니라 액체임을 깨우치기 바란다. ‘겨울 쑥부쟁이’는 시를 구성하는 맛이 탄탄하다. 그러나 진술적 낱말들이 자주 튀어나온 것이 시의 감도를 떨어트리게 했다. 치열한 다툼 끝에 ‘염전에서’에게 낙점을 주었다.

당선작은 왜 시조를 쓰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찾아낸 글감에 대해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말을 꿰고 있다.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의 첫 수 초장에서 “가슴엔 뱃고동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의 마지막 수 종장까지 소금밭을 배경으로 “서산댁”을 내세운 삶의 포착을 외연성과 내포성이 알맞게 결구하여 시조가 갖는 시적 감도를 높여주고 있다. 더욱 정진하시기를 빈다.(심사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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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서울 황조롱이
김춘기

1.
비정규직 가슴 속에 안개비가 내리는 밤
여의도길 전주 한켠 둥지 튼 황조롱이
옥탑방 살림살이가 긴병처럼 힘에 겹다

2.
산 능선 너럭바위에
건들바람 불러 모아
풋풋한 날개 저어
억새 탈춤에 신명나면
제일 큰 나무에 올라
흐벅진 몸 곧추세우던 너

3.
오늘은 밤섬에서
찢긴 비닐 비집고는
마포대교 어깨에 앉아
깃털 훌훌 털어내고
북악산 여름 숲으로
건듯 날아오르는구나

4.
순환선 철길 위를 에도는 내 발자국
휴대폰에 떠오르는 눈빛 모두 잠재우고
물소리 푸른 강가에서 시계 풀고 살고 싶다

[당선소감]
시어 갈고닦아 다시 보고 싶은 시조 쓰고파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 시조는 우리 주변에서 작은 소재를 찾아 그것을 가장 선명한 언어로 압축하고, 거기에 운율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를 좋아한다. 그러나 많은 시를 읽고 난 후, 그 시가 다시 손에 잡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현대시조를 읽고서 그 잔잔한 울림에 마음이 끌릴 때가 많았다.

시는 세상의 많은 광물 중 가장 순도가 좋은 것들만 골라내 이를 다시 깎고 다듬어 독특하게 진열해 놓은 언어의 보석인 것이다. 나는 이 보석들이 보면 볼수록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그런 시조를 쓰고 싶다.

나는 본래 전공이 과학지만, 문학을 전공하지 않아 시쓰기에 더욱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평소 관심이 있는 환경문제에 대하여 접근해 볼 생각이다.

당선소식을 들으니 멀리 광주의 송광룡 시인이 생각난다. 7~8년 전 내가 시조에 입문할 때 길라잡이가 되어 주신 분이다. 이 기쁨을 맨 먼저 전해드린다. 또한, 열린시조학회의 윤금초 선생님과 동료문인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오늘따라 고향의 늙으신 아버님과 두 달 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가 더욱 그리워진다. 그리고 두 아들 남인이 남규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문학의 텃밭을 일구며, 내가 아끼는 제자들을 비롯한 정겨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약력> ▷1954년 경기도 양주 출생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졸업 ▷제9회 금호시조상 우수상 ▷제5회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우수상 ▷현재 경기도 고양시 덕양중학교 교감


[심사평]
4연 작품의 구성과 긍정적 삶의 자세 돋보여


최종심에 다섯 편이 올랐다.
강원도 이영신의 '동강사설', 부산 변경서의 '가을과 겨울 사이', 경주 김희동의 '풍경 울다', 광주 이상선의 '아침, 수산시장', 경기 김춘기의 '서울 황조롱이'다. 모두 연시조 작품으로 4연 구성 2편과 3연 구성 3편이었다. 언어 감각, 표현력, 이미지 처리 능력, 가락의 유연성에 있어 열심히 쓴 작품이었으나 연과 연 짜임의 필연성이 부족한 것 같았다.

당선작 '서울 황조롱이'는 4연 작품의 구성이 돋보였고 시인의 감정을 황조롱이에 이입하여 현실 문제를 아프게 조명하였으며 현대 시조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고 자연 속으로 돌아가 일상사의 무거운 짐을 부려놓고 건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돋보였다. 〈본심 위원 : 전치탁 정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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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눈 속의 새
황성곤

광년을 달려와 빛이 된 투명한 새

망막에 앉은 기억, 때 늦은 아픈 고백

이른 봄

번갯불 튄 그대 스르르 한 점 불이었던

빅뱅의 환상이거나 눈부신 기록이었을

이별 뒤 하얀 여백 지울 수 없는 허공 같아

가락지

흰 원을 걸어 필생의 울음 가둔 걸까

수축하는 잔등, 달이 팽창하는 저 언덕

환각처럼 눈 속의 새 쪼그려 앉아있는데

우수수

눈망울 털어내면 겨울 그 후, 빈 고요


[당선소감]
살아있음이 희망이다

햇살이 따뜻한 창가

화분에 꽃 피운 나무 한 그루 유심히 본다.

뿌리를 드러낸 동백 같기도 하고 철쭉 같기도 한, 나무이고자 하는 그의 집중은 모든 내 상상의 말들을 수렴해간다.

무엇을 말했지만 나는 듣지 못했음으로, 그가 나무 안에서 꽃 한 송이 들어올린다. 발밑이 아득하고 흔적 없는 곳에서 바람이 인다.

아직 여물지 못한 내 언어가 심하게 흔들릴 때, 나는 왜 너보다 앞선 나였을까?

경계를 허물지 못한 나무 앞에서

아프다.

꽃과 짐승과 사람들이 또한 아프다. 선홍빛 언어를 열고 나오면 자음과 모음을 버린 신의 음성을 곧 만나리라. 하여 저 완성된 언어의 세계에 한없는 경배를 올린다.

내 비록 어긋난 문법으로 세상이 낯설지만, 친구여 누이여 이웃이여 사랑의 한 몸으로 항상 충만하고 행복하시길. 오직 살아있음이 희망이고 기쁨이며 한편의 詩인 것을….

끝없는 어원의 탐색을 새롭게 인도해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당선의 영광을 양보해주신 분들에게 죄송함과 더불어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보답으로 미숙한 언어를 갈고 닦아 세상의 맑음을 비쳐 보이겠습니다.

끝으로 평소 지도해주시고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양점숙 시인님과 청문학동인 화시동인 문우 여러분에게 고마움 전하며 당선의 영예와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약력 △1960년 전북 익산 출생 △전주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청문학동인, 화시동인

[심사평]

최종까지 거론된 이들은 황성곤, 유현주, 박해성, 박선미, 최재남, 박미자 등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황성곤의 ‘눈 속의 새’는 특이한 시적 언술 방식을 보인다. 그가 함께 보낸 다른 세 편들도 그런 점에서 이채롭다. 범상치 않은 언어 운용으로 읽는 이의 눈길을 끌어당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력과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오랜 시력에서 기인된 바도 있겠지만, 새로운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와 세계와 자아의 교호 속에 어떻게 언어가 제대로 된 개성적인 이미지를 빚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공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기량이라고 생각한다.

대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심미적 재현을 성취하고 삶의 원리를 비밀스럽게 드러내는 이러한 형상 능력은 다른 많은 응모작들의 가장 앞자리에 세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한 엄정한 정형 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으면서 시상을 자유자재로 전개하는 활달한 수사법이 담긴 내용과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신뢰를 더한다.

형식을 부리는 능력을 웬만큼 갖추고 있으나, 그리 놀랍지 않은 일상사를 평이하게 그리고 있는 점은 적잖은 응모자들에게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또한 상당한 수련의 흔적이 엿보임에도 끝까지 한 호흡으로 끌고 가지 못하거나, 참신한 발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도 더러 눈에 띈다.

표피적 묘사를 넘어서서 대상의 본질적인 국면을 관통하려는 상상적 언어의 힘을 보여주는 일에 힘을 기울일 때 고유의 형식과 결합하여 보다 밀도 높은 언어 예술적 성취가 가능할 것이다. 이 점은 당선자나 모든 응모자들이 함께 되새길 일이다.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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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염전에 들다.
연선옥

잇몸 다 드러내고 철썩이며 들먹인 어깨
얼마를 대끼고 대껴야 흰 뼈 되어 만날 건가
투명한 허물을 끌고 여기까지 흘러온 지금.

남은 상처 자투리를 누가 또 들여다보나
떠밀리고 넘어지다 등에 감긴 푸른 멍울
한걸음 이어달린 길, 그길 하나 밀고 와서.

낮은 데로 에돌아와 오랜 날 빗장 잠그고
옮겨 앉은 짭짤한 바다 거친 숨 몰아쉬면
바람결 다듬고 벼려 스스로 낮추는 키.

어디쯤 붙잡지 못한 잔별 죄 쏟아지고
햇빛 가득 그러모아 제 가슴에 피는 꽃들
몸 바꿔 떠나고 있나, 비탈진 세상을 향해.

[당선소감]

끊임없이 우리말을 가꾸고 다듬고 아끼며 걸러내는 일, 그것이 글쓰기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아는 것만큼 보이듯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는 것만큼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일 것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부정과 긍정의 두 축에서 세상을 가르며 산다. 더러는 이해와 편리에 따라 스스로 만든 경계에서 혼탁한 마음을 키우기도 한다. 혼탁한 마음에서 맑은 글을 생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절차탁마의 글쓰기 작업은 또한 나를 가꾸고 다듬는 일이기도 하다.

내 가난한 언덕에서 불어주는 바람이 있어 행복하다. 좀더 따뜻하게 포용하지 못하고 편협함으로 외면했던, 지난날 나를 스쳐간 그 모든 인연에게 미안하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베풀어주는 자연의 혜택에 감사한다. 내가 글을 쓰고 생각하는데 자극이 되어 준 것은 사람이었고 자연이었고 사물이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과 학우들, 그리고 설익은 내 작품에 대하여 늘 뼈아픈 고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힘이 되어준 열린시조학회 선후배들을 이제 한번 포옹해주고 싶다.
처음 시조를 만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변함없는 지도와 관심으로 이끌어주신 나의 스승 윤금초교수님에게 이 영광을 돌리며, 조금은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오늘 나의 겨드랑이에 새로운 깃털을 달아준 경남일보와 저의 부족한 작품에 힘을 불어넣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을 올린다. 한눈팔지 않고 우리 고유의 정형시, 시조를 위하여 정진하는 한 톨의 천일염이 되고 싶다.

*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심사평]
때 묻지 않은 구성력 훌륭


앞으로 우리 시조문단을 개척해 나갈 역량 있는 신인을 찾기 위해 전국에서 응모해 온 작품 봉함을 건네받아 조심스럽게 개봉하였다.

시조는 많은 말을 함축으로 여과 하는 데서 시작한다. 시조가 가진 생명력은 개성과 정형적인 서정성에 있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의 정서를 노래 하였는가, 참신한 제 목소리 인가, 장(章) 의식을 살리고 있는가, 연시조의 경우 각 수(首)와의 구성도는 어떠한가. 그리고 가능성 등을 심사관점으로 상기하면서 새해 새아침을 정갈하게 조명하고 싶은 심정으로 정독에 들어갔다.

우선 율격이 지나치게 산만한 작품, 고풍조의 작품, 같은 시어의 의미 없는 중복 사용 작품 등 일부를 제쳐놓고 보니 다른 대다수의 작품들은 수준작이 었다. 언젠가 빛을 볼 가능성이 엿보인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윤평수의 「저녁 놀」 이남순의 「판자촌 봄비」 연선옥의 「염전에 들다」 전흥미의 「주택개발공사현장」 이선의 「그 때 그 팽나무」 우은진의 「새것은 상처를 만든다」 연정현의 「외래 병동에서」 강봉덕의 「새벽 시장」 송필국의 「채미정에서」 등을 뽑아 들고 다시 정독했다. 모두 아까운 작품이었으나 앞에 예시한 심사 관점에 더 가까이 닿아 있는 작품으로 「저녁 놀」 「판자촌 봄비」 「염전에 들다」 이 세 편을 골라 최종심에 들어갔다.

윤평수의 「저녁 놀」은 두 수로 된 연시조이지만 장 의식의 깊이가 있고 정형적 서정성이 돋보였다. 이남순의 「판자촌 봄비」는 시조의 형식적 논리를 충분히 체득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첫째 수에서 셋째 수에 으르기 까지 주제를 이끌어 가는 간결한 저력을 보여 주었다. 연선옥의 「염전에 들다」는 생명 의식을 바탕으로 조명한 신선한 작품으로 보였다. ‘햇빛 가득 그러모아 제 가슴에 피는 꽃들’ 등 표현의 경지를 보였다.

당선작은 숙고 끝에 연선옥의 「염전에 들다」로 정하였다. 이 작품은 각 수의 역할과 주제적 구성도가 조금도 때 묻지 않았다. 당선자는 함께 낸 모든 작품에서 우리 시조 문단을 개척해 나갈 신선한 가능성을 믿게 해 주었다. 최종심에서 자리를 내 준 두분 작품은 놓치기 아까웠다. 당선자에게 축하 드린다. (김교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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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 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향일암(向日庵)
양태지

신선이 머물던 자리 알 순 없지만
사바의 노여움은 저만큼 달아나네
하늘로 뻗쳐 오르는 저 바다의 용솟음

일만의 햇살이 번뇌를 잠재우랴
구름은 암석불 사이에 모로눕고
옷자락 저미며 가는 바람도 쉬어간다

오가는 사람마다 머뭇대는 바윗틈
님 향한 버거운 길 오롯이 떨치고서
보살은 속세를 나선 듯 염화시 합장하네

은은한 풍경소리 태고적 그대론데
남해라, 돌산에 갓 향기 매섭고요
해조음 드믄 암자에 독경만이 흘러라.

※향일암 : 해를 향한 암자란 뜻, 여수 소재. 바다의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함.

[심사평]

기호학적으로 우선 접근해 보면 ‘8’자를 90°로 회전시키거나 혹은 역회전시키면 ∞(무한대)가 된다. 또한 ‘8’자 앞의 ‘0’자 두 개를 합하면 역시 ∞(무한대)가 된다. 이렇게 ‘8’자(팔자)를 눕게 하면 완전히 안정된 상태가 된다. 그렇지 않고 ‘8’자를 세워놓으면 언젠가 기울어질 것 같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머물게 된다. ‘0’자도 세워놓으면 불안정해 보인다(즉 해가 서서 떠오르게 되면 불안정하게 보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앞에 2(×)가 있다. 그래서 이를 모두 복원시키면 2×∞×∞가 되어 2∞∞가 되어 이는 역시 2∞와 같다. 이것이 2008년의 의미이다. 기호 ‘0’는 해를 의미한다. 또한 이 ‘0’는 완전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비우고 난 뒤에 완전함에 이른다(2007년을 완전히 비우고 난 뒤에야 2008년이 온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다 비우고 난 뒤에야 완전한 ‘0’가 되어 둘레에 울타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0' 외의 다른 숫자는 둘레(=울타리)가 없다.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양태지의 작품이 해와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해의 문을 열어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향일암(向日庵)의 뜻 속에서 해를 향해 문을 열고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해를 향해 있다는 것’, 이것은 인간 누구나에게 마음 속 깊이 내재해 있는 존재의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꿈틀거리고 있는 욕망의 해, 그 해의 뿌리를 향해서 해의 외출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는 웅장한 일출의 광경을 보기 위해 여수의 돌산도 향일암(向日庵)을 찾는다.

바닷속에서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온 듯한 다양한 형상의 바위들이 거북이처럼 포복하고 있거나, 태양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이 돌산도는 바다의 뿌리까지 그 몸체를 심고 있다. 즉 돌산도는 굴지성과 굴광성의 방향으로 바닷속에 있는 해를 낚아 올리기도 하고 바다를 탈출하여 하늘로 오르는 해를 연모의 시선으로 채집하기도 한다.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돌산도를 바라보면 바다의 심장이 돌출된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돌산도의 서정은 생명력이 있다. 피끓는 풍경으로 승천하는 해처럼 맑고 찬란한 박진감도 있다.

이 돌산도의 진실을 꿰고 있는 양태지의 시작법은 더 웅장하다. 용(龍)의 심장 박동처럼 힘이 있다. 용솟음치고 있다. 그는 시 속에서 해를 패대기쳐 버린다. 이때 ‘일만의 햇살’들이 무수히 터져나온다. 이것은 무한대의 빛이다. 무한의 햇살이다. 그러니 ‘사바의 노여움, 번뇌’가 뼈빠지게 줄행랑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는 시간을 의미한다. 해는 365일의 시간 덩어리이다. 2008년의 해도 시간 덩어리이다. 그 무한대의 시간의 보자기, ‘0’가 한 명도 아닌 한 년도 아닌 2008년의 해를 양태지가 패대기치는 시힘에 의해서 그 견고한 시간의 껍질을 터트리고 ‘일만 햇살’, 즉 일만(무한대) 시간으로 터져나는 것이다. 그래서 2007년 동안 오지 않았던 2008년의 햇살이 온 누리에 퍼져 오르게 된 것이다.

일만 햇살의 장엄함 때문에 다가온 구름도 ‘암석불 사이에 모로 눕’는 것이다. 이 모로 눕는 것, 이것은 팔자(‘8’자)가 옆으로 눕는 것이다. 즉 ‘8’자를 90°로 회전시키는 것이다. 이 시각대의 모든 것이, 사 바세계의 자연이 모로 눕는 것이다.

이 태양의 외출 전에 이미 양태지는 ‘하늘로 뻗쳐오르는 저 바다의 용솟음’으로 우리 희망의 존재처럼 상징되는 바다의 골반을 갈라놓았다. 그런 다음에 대우주의 자궁, 그 무한대의 자궁을 열어 청명한 해를 발출시켰다. 그러고 난 다음에 출산한 아이의 볼기를 쳐 내리듯 그 년의 동그란 엉덩이를, 2008년(女ㄴ)의 해의 엉덩이를 여지없이 패대기쳐 버린 것이다.

‘하늘로 뻗쳐오르는 저 바다의 용솟음’의 상태 전에는 뻗쳐오르고 용솟음치게 하는 행위가 전제되어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하늘로 뻗쳐오르고 용솟음치는 힘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폭탄의 폭발력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인데 그 힘의 분산이 있기에는 더 큰 핵폭탄의 폭발력과도 같은 힘의 뭉텅이가 바다에 가해졌을 경우가 전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를 창작한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바다는 가만히 있고 태양도 가만히 있는데 작자가 심상 속에서 그렇게 활유법의 시힘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은 지구보다도 큰데 어떻게 지구의 일부분인 바다에서 태양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바다는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용솟음친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시의 힘이다. 양태지가 이끌고 있는 시어들의 폭발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시힘이 무엇인들 패대기치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양태지가 지니고 있는 그 시의 힘이 태양의 배를 갈라놓아 지금 막 ‘일만 햇살’의 시간들이 광란을 하고 있다. 그래서 ‘번뇌도 잠재우고’, ‘구름도 모로 눕고’, ‘바람도 쉬어’가는 등의 상황들이 오버랩 되며 자연의 힘 앞에서 만물이 경외심으로 숨죽이고 있는 향일암의 역사를 시화한다.

그리고 이젠 시간의 흐름에 따라 3째수와 4째수에서는 일상의 평온함이 깃들고 있다. 이 시의 4연이 모두 기승전결의 형식으로 평화로운 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시조의 기승전결의 형식을 무리 없이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거꾸로 이 시의 연을 배치한다고 해도 기승전결의 형식이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시조의 각 수를 거꾸로 배열하면 저녁부터 일출시까지의 광경을 묘사했다고 볼 수 있고, 이 시의 각 연을 지금처럼 배열하면 일출시부터 저녁까지의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겨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양태지가 그리고 있는 희망의 시간대는 무한의 시간의 집합체로서 기호로 표시하면 ‘0’이라 할 수 있다. ‘0’은 먼 바다의 시간의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시계이며, 향일암의 이름에도 들어있는 이 해시계가 양태지의 이름에도 들어있어서 그의 시는 해의 몸통을 품은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첫수 마지막 잣수 3(용솟음), 둘째 수 마지막 잣수 4(쉬어간다), 셋째 수 마지막 잣수 4(합장하네), 넷째 수 마지막 잣수 3(흘러라) 등에서 잣수의 3/4/4/3의 변화에서 시의 꼬리를 풀고 매듭짓는 창작법을 볼 수 있다. 잣수 3에서 매듭짓고 다시 잣수 4에서 풀고 다시 3으로 매듭짓는 것이다. 물론, 이 변화의 묘미를 벗어나서 각 종장 끝을 잣수 3으로 통일하고 의미와 이미지의 신축성에서 파격적인 변화의 내밀함을 시도했다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시조 문학은 극도로 제한된 절제의 미학을 품고 있다. 정해진 잣수에 따라 극도로 절제된 창작만이 민족성과 문학의 효용성이 마주칠 때 그 시조의 기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양태지가 풀어놓은 이 시조의 배열대로 분석한다면 시조의 끝부분 종장의 처리들은 장엄하고 고요한 평화의 꿈으로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조의 종장들의 첫수에서 ‘저 바다의 용솟음’, 둘째 수에서 ‘바람도 쉬어간다’, 셋째 수에서 ‘염화시 합장하네’, 넷째 수에서 ‘독경만이 흘러라.’ 등인데 첫 번째 수에서 치솟아 오르는 힘의 분출을 표현하고, 두 번째 수에서 힘의 분산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 번째 수에서 합장까지 하면서 시간의 요동을 접는다. 이제 네 번째 수에서는 그저 그대로 두어도 될 만큼 안정권으로 진입하여 그대로 두기로 한다. 그래서 마지막 시어 ‘독경만이 흘러라.’도 방임의 자세를 취한다. 이제 이 시조의 임무를 마쳤으므로 마지막 수의 마지막 종장에 와서야 마침표를 기입한다.

그 마침표 또한 해의 알로써 시간의 중지를 뜻하는 것이며 이 시간의 중지는 완전무결한 완전의 상태, 정적의 상태로서 완전한 평화의 상태임을 말한다. 점(마침표)은 한 문장의 완성을 뜻하며 또한 한 문장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이 해의 알은 시간의 바다에서 알까기를 하며 튀어오를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출중한 시인이 다음에 또 나타나서 향일암(向日庵)의 의미대로 해를 연모하며 용솟음치는 시어의 폭발력으로 대우주 출산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함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우리에게서 시조가 죽었다고 극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시조는 시가 아니라고 망언을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시조문학이 홀대받는 이 어려운 시기에 이만큼의 시조를 쓸 수 있는 사람도 흔하지는 않다. 시조로 등단하는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시조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문예지로 등단하는 작품 속에서 그런 슬픔을 보았다.

양태지는 시조를 알고 있다. 시조의 율격도 알고 있다. 시의 힘을 어떻게 매듭짓고 풀고 품어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것을 대자연에 얼마나 매치(match)시켜서 응축되고 풀어지는 우주의 음향을 튼튼하게 엮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 그의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박인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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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천수만 가창오리
김종열

1.
들레는 늦가을 날
하늘 길 빗장 풀 즈음
천수만 저 갈대밭 빈방 여럿 예비하고
제 몸 확! 불질러놓고 연방 풀무질한다.
밀레의 대작이다,
모이 줍는 가창오리
비로소 붓질하듯 군무(群舞)는 펼쳐지고
휑하던 너른 그 들녘, 아연 잔칫집인가.
일 년을 하루같이 덧칠만 되풀이하는
감 물든 여문 해가 낙관 하나 꾹 쏟아내고
저 멀리 물러선 방죽, 타닥타닥 잔불 끈다.

2.
간월암 갈마드는 갯바람에 실린 물결
무르녹은 나의 하루 놀빛 속에 깃들어도
예인선, 예인선처럼 산 그림자 끌고 간다.


[당선소감]
먼 길 떠날 채비를 끝내고… 날자!

어젯밤 꿈결에 새들의 날갯짓 소리를 들었습니다. 천수만 가창오리 떼가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제 머리맡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손 시린 바람이 부는, 무채색의 겨울 하늘을 수놓으며 새들의 군무가 펼쳐졌습니다.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모여드는 새들의 춤사위는 ‘날자, 날자, 날자꾸나’ 하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상의 날갯짓을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 한동안 말문이 막혀 어리둥절했습니다. 처음엔 시를 습작했습니다. 7년을 독학으로 시를 쓰다 민족시사관학교를 찾게 되었고, 시조 쓰기 내공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시조는 3장 6구 12음보 정형의 틀 안에서 마음껏 자신의 세계를 펼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시조를 창작하다 보면 자유시에서 느낄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저만이 맛볼 수 있는 여유와 운치, 멋을 한껏 누리게 됩니다. 아직은 설익은 저의 ‘천수만 가창오리’의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께 큰절 올립니다. 늘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딸 은영이, 개구쟁이 같으나 철이 일찍 든 아들 기헌이, 그리고 부모님께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아울러 직장 동료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 천수만 가창오리 떼가 이제 막 먼 길을 떠날 채비를 끝내고 비상의 날갯짓을 하고 있습니다. 날자, 날자 날자꾸나!

△1961년 경기 여주 출생 △성일고 졸업 △현재 ㈜경동 관리팀 근무

[심사평]
치밀한 구성-생생한 언어 완성도 높아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홀로 서는 강’(공상례) ‘겨울 을숙도 등본’(설우근) ‘완도 배다릿집 어부 조씨’(김용채) ‘길 위에서’(유순덕) ‘천수만 가창오리’(김종열)였다.

저마다 벼루를 바닥내고 몽당붓을 만들며 벼려 온 기량들이 시조를 한 단씩 높여 나가고 있다. ‘홀로 서는 강’은 섬세하고 투명하게 강의 내면을 그리고 있으나 주제의 새 맛을 보여 주지 못했고 ‘겨울 을숙도 등본’도 말의 씀씀이가 잘 다듬어져 있으나 글감의 낯익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완도 배다릿집 어부 조씨’는 실사구시의 어법에는 충실했으나 사실에 너무 얽매인 것이 흠이 되었고 ‘길 위에서’는 시상의 전개에 무리 없는 가작이나 중량감에서 밀렸음을 일러둔다.

당선작 ‘천수만 가창오리’는 이 시를 구상하고 투고할 때는 태안반도에 기름 유출이 되기 전이었을 터인데 우연하게도 철새들이 찾아드는 천수만이 포커스로 맞춰졌다. 그렇다고 소재의 시의성 때문에 가산점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림에서 선과 색채가 예술성을 가름하듯이 시에서는 언어의 연출이 시의 완성도와 직결된다. 이 작품은 4수의 연작인데 1부는 3수, 2부는 1수로 장면을 가른 것도 구성의 치밀성을 보이고 있다.

철새 떼의 군무가 펼치는 스펙터클이 마음껏 휘두르는 언어의 붓끝에서 눈부시게 살아나고 있다. 앞으로 끌어갈 그의 시조의 예인선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리라. (이근배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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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오래된 벽
강혜규

차고 무거운 공기가
등을 밀어낸다
눅눅한 벽에 기대자 물소리가 들려온다
어깨가 들썩이며 우는 흐느낌 같기도 한

어룽어룽 눈물 자국이 길게 꼬리를 물고
긴 못 작은 못 상처가 많은 벽에
고단한 가장의 어깨가
비스듬히
걸려 있다

생의 속도 내려놓고 주인마저 떠난 빈 방
문밖 세상을 향해 무너진 좁은 틈으로
초겨울 매운 바람만 안부를 묻고 있다

[당선소감]
제 시조 한줄에 목이 메었으면


유리창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밟으며 꽃이 피었습니다. 모든 것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겨울 밤에 온 힘을 다해 실가지를 키우고 꽃이 피었습니다. 꽃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깥은 겨울인데도 참 따뜻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교과서에 실린 정완영 선생님의 시조를 읽다가 울컥 목이 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씨앗을 참 오래 품고 살았습니다. 이 다음에 누군가가 제가 쓴 시조 한줄에 목이 메어 시조를 꽃씨처럼 품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는 내내 큰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은 정완영 선생님께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덜 여문 씨를 꽃으로 피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말 안 해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고 계실 ‘나래시조’ 식구들께 큰절 올립니다.

△1962년 김포 출생 △ 2003년 ‘한국문인’ 신인상, 2005년 ‘나래시조’ 신인상 수상 △현재 충북 진천 덕산중학교 교사

[심사평]
농촌 현실 드러낸 사회성 돋보여

본심에 오른 작품은 일곱사람의 35편으로, 5편 모두 고른 수준을 갖춘 경우와 한두편이 뛰어나고 편차가 심한 경우로 대별됐다. 이 두 경향에 대해서 수준이 고른 응모자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적 표현이 우월한 작품을 뽑자는 데 심사위원들이 합의했다.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됐던 작품은 〈낙화〉 〈귀성길〉 〈연해주의 가을〉 〈오래된 벽〉 등 네편이었다. 〈낙화〉는 시조 형식을 부리는 노련함이 있었지만 제목의 진부함과 나머지 작품들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귀성길〉 역시 시조 창작에 대한 연륜이 느껴지지만 나머지 작품과는 편차가 컸고, 5편 중 2편에 부제를 달았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할 당위성을 찾기 어려웠다. 〈연해주의 가을〉은 그 힘찬 음보가 시를 읽는 데 힘을 느끼게 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시적 표현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따라서 당선작으로 〈오래된 벽〉을 뽑기로 합의했다. 당선 작품은 화자의 고향집일 수도 있는 농촌의 빈집을 찾아간 감회를 읊은 것이다. 농촌 현실을 드러내는 사회성과 사물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각, 상징적 의미를 살리는 재능이 돋보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리며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들에게 분발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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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마중물
이남순

살아 네 가슴에 푸르게 가 닿기 위해
어수선한 욕망의 깃발, 하나 둘 걷어내고
무저갱 아래로 아래로 조심 조심 내려간다

지상의 교만함도 지하의 비굴함도
기꺼이 마음 열어 함께 하고 싶었네
내 먼저 너를 만나서 큰 강이 되고 싶었네

이제 길을 열어 흘러가고 흘러오고
우리 서로 비우면 이토록 깊어지나
하늘과 땅이 맞닿아 한 몸으로 출렁인다


*마중물-펌퍼로 물을 퍼 올릴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먼저 윗구멍에 붓는 물

[당선 소감]
따뜻한 삶의 미학 담아낼 터

하얗게 눈이 내리는 새벽 고요를 밟고 날아든 눈처럼 환한 소식 한줄기 신춘문예 당선 통보였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눈발처럼 세상을 잇는 눈밭처럼 겸손하고 따뜻한 삶의 미학을 담아내는 시인이 되겠다고 감히 말씀 올립니다.

시조에 연연하면서 외롭고 고달팠던 지난 시간들이 눈꽃이 되어 하늘 가득 날아오릅니다. 오늘은, 천리 아득한 그 질퍽이는 황톳길을 따라 부모님 숨소리와 고향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이제 3장 6구 12음보를 제 운명으로 제 문학의 영역 안에 앉혀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기쁨보다는 부끄러움과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겠습니다. 스스로를 경계하며 제 앞에 놓인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듯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시조의 문을 열어 주시고 갈고 닦는 길에 한 생을 다하도록 이끌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김석환·남진우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2학년 학우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한 줄의 글보다 시인 정신부터 갖추라고 하시던 회정 선생님 말씀 귓가에 쟁쟁합니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에 등불을 밝혀주신 경남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1957년 함안 출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중

[심사평]
삶의 성찰 잘 담아

 
시조는 분명히 오랜 전통을 가진 하나의 시 장르이면서 정형시 양식이다. 이 두 요소는 현대시조 작가들이 지켜야 할 준거의 폭이면서 동시에 개척해 가야 할 영역이기도 하다.

준거를 묵수만 하면 '현대'의 시조가 아니며, 지나치게 개척에만 치우치면 현대의 '시조'를 벗어난다. 두 요소를 조화시키는 일이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동시에 계승과 창조라는 생명력의 본질에 이르는 소중한 작업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작품수의 증가와 함께 전반적으로 장르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여 수준의 향상도 이루었다고 하겠다.

다만 새로 마주친 사물에 대한 설명이나 경험에 대한 소개에 치우쳐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작품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띄는 점이다. 다매체와 무한 정보의 환경적 영향으로, 시조의 서정적 장르 속성이 간과된 모습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숙고와 토론의 대상이 된 작품은 '마중물', '천수만 가창오리', '단풍책' 등 세 편이다.

'천수만 가창오리'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큰 시각과 해석이 돋보이지만 서정적 내면화가 덜 이루어져 아쉬웠고, '단풍책'은 나뭇잎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읽어내는 비유와 묘사가 뛰어나지만 그것으로 일관하여 시조다운 구성의 완결미가 적은 것이 아쉬웠다.

결국 무던하면서도 삶에 대한 성찰이 완성도를 높여준 '마중물'을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마중물'은 세 가지 점에서 그 장점을 보여준다. 첫째는 읽기 쉬운 점이다. 문장의 통사적 온건함이 산문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지만 시어를 대구적으로 배치하여 변화를 주었다.

둘째는 짜임새이다. 세 개의 연으로 구성하였는데, 그것이 전체로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이룬다. 각 연의 초장끼리, 또는 중장이나 종장끼리 떼 내어 손질하여도 의미가 통할 만하다.

셋째는 주제의 다층성이다. 물을 함께 길어서 먹는 혈연과 지연의 공동체적 삶의 체험에서부터, 오늘날 간접화 문명의 꼭대기에서 소통과 통합이 얼마나 절실한 삶의 태도인가를 읽어내는 문명비평이 녹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자기를 내어놓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성찰을 담고 있다.

시조의 생명력에 대한 고민과 함께 모든 응모자의 정진을 빌어 본다.(심사위원: 이우걸(시조시인) ·장성진(창원대 교수))

 

 

2007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가면놀이-매일신문/ 이 민 아

 

이삿짐 꾸리다가 담지 못한 소품 하나

각시탈 연지곤지 낯붉히던 어린 시절은

내 생애 최초의 극장 눈물어린 퍼소나다.

 

미간도 맞지 않은 가면 뒤에서 숨을 쉬면

얼굴과 얼굴 사이 맺히는 눈물방울들,

웃자란 새 각시 되어 붉은 입술 부딪히던

 

두 눈도 입도 코도 내 것이 아닌 듯 해

마당에 널브러지고 허방도 짚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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