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동암 詩 모음 (191)
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시작詩作의 모서리 날 선 파석의 애리 한 꼭짓점처럼 시간의 둘레는 언제나 두려움이다 한 번도 깎아 세우지 못한 소음만 난무하던 얼룩진 자리 그을린 불빛 닦아 내며 음지에 엎드려 빛살 캐는 한 송이 꽃이다 환각 된 상태처럼 비틀거리던 지난 시간 그 투박한 노선 모서리 굴려 나와 또 다른 나의 뒷면 바라보면서 억새 손 흔드는 저 언덕 넘어오는 둥글고 투명한 저 환청 들어 볼 일이다 하늘 문 여는 한 줌의 바람 구차한 형식도 뭣도 없이 쓰 내려가는 휘~이휘~이 싸~ 시, 나는 가벼움이다 그러하듯 한 영혼의 무게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미치도록 가슴 떨리게 하는 언어는 없을까? 에이던 깡마른 정서 情緖 모서리의 틈서리서 갈구에 견뎌온 무게 화석으로 굳은 저 명상 그 어둠과 적막, 부서지기 위해 맷돌 눌림 당한 ..
바람의 울음 들리는/ 구본홍 갸우뚱갸우뚱 흑과 백이 조화 이루는 이유 무엇일까 질문 던지며 보내고 싶지 않아도 나의 귓전 때리고 지나간다 비 갠 하늘 바람의 잎사귀 무지갯빛 선명한 야자수 키큰 나무들이 허공 짚고 서 있다 무소유로선 높은 그곳 내다보는 푸른 잎들 그 냉혹한 미소 바람에 묻혀 보내며 세상 속으로 묻은 아픈 뼈들 달래고 있다 끼니와 물 한 모금 갈구한 윙윙 북소리 그 위로 선 유칼립투스 나무는 또 하나를 얻기 위해 허물 미련 없이 벗어 내던진 아픈 자리 구릿빛 바람의 울음 솟구쳐 올랐다 가라앉는다 스스로 더한 고독 속으로 자신 내가 맡기는 고통을 희석하려는 하얀 풀꽃의 영혼 말발굽만큼의 거리로 삶 한 움큼씩 피워 올리며 서 있다 갠 하늘 꽃 빛 선명한 뜰에 비대해진 키큰 나무 삶을 응시하는 ..
좀들이쌀 이사하면서 지하실 구석진 곳에 슬그머니 놓고 왔다 묶인 짐들이 제자리를 찾는 사나흘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주소 바뀐 집에서 놓고 온 좀들이쌀 항아리를 생각했다 오래된 기억들이 출렁거렸다 뒤주 옆 좀들이쌀 항아리 바닥 긁는 소리 단잠을 깨우는 날이면 만장기도 없는 상여 한 채가 절뚝절뚝 뚝방 길을 밀고 떠나갔다 둘째 언니는 여전히 아침저녁 놋숟가락으로 어른 수만큼 쌀을 덜어냈다 항아리에 조금씩 쌓이는 좀들이쌀 이장집 할머니가 함지박 이고 사립문을 들어서면 반도 못 찬 항아리가 텅 비었다 그런 날이면 상여 한 채가 뚝방 너머로 사라지거나 타지에서 흘러온 영월댁이 몸을 풀었다며 어른들의 근심이 우물가로 모여들었다 이사한 지 두 주일 지나 손잡이 떨어져 나간 그 항아리를 찾아 나섰다 마음 앞세우고 서..
새벽에 젖다. 내 작은 방 밤새 울림으로 혼자 울다 밤새운 부재중 전화 셋 통 몸의 사이클조차 풀렸다. 다시 나사못처럼 팽팽하게 조여 지는 새벽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뇌관 속에 새긴 한때 허름하게 녹슨 기억들 물무늬 멈출 때까지 희미한 백열등 중얼거림으로 감추면서 애타는 열망 강렬하게 솟구치는 새벽어둠에 푹푹 빠지는 맥박 소리 아직 미명인데 졸음을 털어내지 못한 수척한 가로등이 호흡 한 줄기 가볍게 생각하는 힘을 풀어내면서 사투리로 쏟아지는 빗소리 망망하게 바라보면 새벽바람이 귓가에서 펄럭인다 나의 꽃잎 이유 없이 빗물에 젖는 새벽 새벽 비 참 조용히 내린다. 불빛들을 말끔히 닦으면서 차갑게 시달리는 주소 불명의 체류자처럼 창문에 빗방울들이 쓰디쓴 이빨을 갈며 흘러내린다 누군가 하얗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