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좋은 詩란 본문
좋은 詩란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언어의 그림
즉 언어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그림도 선명해야하고
흐릿하거나 모호한 그림을 그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흐릿하고 모호하면 독자들은 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잘 알 수 없다
시인은 슬라이드에 선명한 그림을 독자의 스크린에 비추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알수있다
언어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언어가 필요한 것이다
“예“
사랑이 둥그더냐 모나더냐
길더냐 짧더냐 젤수 있더냐
하도 길어서 끝간데를 모르더냐
사랑은 추상적 언어 사랑하면 사랑이 무엇인지
어떤 사랑인지 즉 불꽃같이 타 오르는 사랑인지
물과 같이 미지근한 사랑인지 감각적으로 그려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장미 한 송이를 그대 책상위에 몰래놓고 왔습니다”라고 하면
어느 정도 장면이 그려 집니다
장미 한송이로 이미지화시켰고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표현 하는데에
사랑이 둥근지 모난지 긴지 짧은지 잴 수 있는 것인지 물었다
그리고는 사랑이 하도 길어서 끝 간 데를 모른다고 했다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비교적 구체적 이미지로 표현해 놓고있다
시에서는 이렇게 구체적인 이미지로 감각화시킬 언어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언어를 구체적인 언어라고 말한다
이미지에도 등급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비싼 값을 쳐주어야 할 이미지와 그렇지 못한 싸구려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싸구려 이미지는 내버려야 한다
그렇게 내버려야 할 싸구려 이미지의 한 예로는
<국화꽃이 피어 있다> 와 같은 가상의 시구를 들어볼 수 있다
피어있는 국화꽃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이니까
이 한 구절도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국화꽃이 어떻게 피어 있으냐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위 언급은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이미지화시켰다고 해서
전부가 좋은 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미지가 싸구려 이미지이냐 아니냐
그 등급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고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이라면
구태어 시로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참신하고 예리한 그런 이미지이어야 좋는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의 두 시조는 이러한 등급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적절한 텍스트이다
“예“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에 너 홀로 피었는가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이정보 시조)
저 웃음을 보아라 왁자한 빛의 모임
향긋한 수액뽑아 순금으로 이룬 궁궐
저렇듯 세상을 사는 무더기로 피는 황홀 (김계연의 국화전문)
위 김계연의 시조 국화는 국화꽃이 어떤 국화꽃이 어떻게 피어있는지를
은유를 통해서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화가 피어있는 모습을 웃음 순금 황홀 같은 구체적인 언어를 동원하여
감각적으로 이미지를 그림 그리듯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정의 시조는 그렇지 않다 국화의 절개를 상징한다든가
지조를 상징하는 그런 상투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과거에 많은 시인들이 써왔던 상투적인 이미지들이다
이런 이미지는 현대에 와서는 이미 싸구려 이미지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같은 이미지를 자꾸 반복하여 사용해서는 안된다
시인은 어느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그것이 비유적 이미지이든 상징적 이미지이든
새로운 이미지 창조이어여 한다
인습에 얽매지 않고 새로운 개성으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눈이 필요한 것이다 구체적인 언어를 동원한다해도
인습적인 상투적인 싸구려 이미지는 써서는 안된다
언어는 구체적이고 정확해야하며 새로워야하며 개성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그러한 언어로 표현 했다 해도 이미지가 신선하지 않으면
그 시는 좋은 시라고 말할 수는 없다
흔히 초보자들은 자기의 생각을 그림으로 보여주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설명해주려고 한다
즉 몇 개의 자료를 제시해 보면
어둠이 깊을수록 정념은 더 날카롭다
불신의 창을 뚫고 적막 속 달빛 묻어와
가리듯
촉수를 세워 숨막히는 간절함
손끝시린 낯선 바람 불편한 창가에서
다듬은 발톱마다 핏물 배어들어도
오늘 밤
타는 목마름으로
홍등을 켜고 있다 (김세환의 선인장 전문)
맥없이 크지않고
매듭 분명 짓고 산다
속을 비워 귿은 의지
때를 봐선 휘어진다
모두들
떠나간 계절
홀로 지킨 퍼런 눈빛 (김몽선의 대나무)
이러한 시는 감각적 촉감적 시각적으로 그림 그려져 있다
많은 참고 되었으면 한다
*신웅순 시조시인 중부대 교수 글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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