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동암 詩 모음 (190)
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한택 식물원에서 무더기 무더기로 핀 얼굴들이 고와라 갓 태어난 백옥의 살빛 따뜻하다 봄 햇살에 안겨 배냇잠 자는 모습 보면 문득 산부인과 분만실이 떠오른다 여기 몇 호실입니까? 모든 게 있는 그대로 곱고 촉촉한 호실마다 마른 입술 깨물던 산고 치른 자리 자유 없는 몸이 자연스럽게 나사처럼 뒤틀리다 태산을 무너뜨릴 힘에 떠 밀려 나온 아직은 가벼움의 몸짓 정해진 통로를 향해 발버둥은커녕 무참히 오므리고 들리지 않는 비명마저 봉쇄당한 캄캄한 문 세상을 향해 나온다는 것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향기로운 것은 고요한 어둠을 부수고야 얻을 수 있다는 것 한택 식물원 산실마다 고통을 이겨낸 빛을 내 뿜는 이름들 부채붓꽃, 금낭화, 매발톱, 개불알 꽃 원시의 빙하 빨아올려 벅찬 웃음 터트리고 있다 혼절을 거듭한 고통..
홍등 거리 시간의 완벽한 안쪽에 웅크리고 누워 잠들고 싶었다 빛의 입술에 물린 바람에 눕는 억새의 싸한 울음 같은 어느 젊은 불빛이 문턱을 넘고 있는지 우연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틀어진 갈구의 목쉰 이음의 후회에서 운명이 아주 잠깐 망설이는 순간의 그늘로 물들이는 서러움이 모래알처럼 방향 없이 흩어져 꿈틀거리는 비린 향 놀지는 마음같이 입술에 빨갛게 물들이며 서러움의 검은 뼈를 새워 기댈 곳 없이 차가운 이마로 얼룩진 침대 위에 향기 없는 꽃으로 스러져 눈의 음정으로 응시한다 연모지정 戀慕 指定으로 절이던 볼록 가슴은 심연으로 되비치는 아득함과 등 뒤의 어둠과 눈앞의 환함이 서로를 풀무질할 때 그들에게 구석의 모서리 갈아 먹혔으므로 표정 없는 모습들이 붉은 꼬마 등 아래 옥살이처럼 앉아있다. 자우룩이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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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잎의 반란 수 없는 발자국 지워가는 이끼 낀 바위 날로 선 길섶에 자신의 무게마저 지탱하기 힘든 그저 태어났으므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먼 산 그림자 스며드는 반란의 촉수 독초보다 더 축축한 잿빛 하늘 찢어내는 흰머리 풀고 아름다운 무질서의 춤 그 억새 숲 갈빛 등성이로 바람의 한풀이 보다 떨리던 사지로 그림자 없는 맨발이 되어 매만져 볼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붉은 눈동자 속에 빈 하늘 가득 담아 무수한 불면의 넋으로 생의 비탈길에 눕는 너 한숨 희미하게 체념하는 보폭의 지문 떨어져 떨어져서 차디찬 땅바닥에 뺨을 대고 깊은 사연으로 눈 감는 입술이 차갑고 초 취한 설움 얼굴 누이야 누이 같은 너 산골짜기만큼 적막했던 나는 어떤 때는 자꾸만 네가 그립기도 했다 무겁던 나날 하얗게 저문 가벼움 너도나도..
당신 어둠 한 송이 먹어요. 환상적인 맛이에요 향 이미 없는 것이 향기로워요. 다시는 불 켜지 마세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이 아득한 맛 황홀해요. 미치도록 황홀해요. 깊은 맛 표현할 수 없어요.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옷이 필요하지 않아요. 구두가 필요 없어요. 넥타이나 보석이 필요 없어요. 직위나 노숙자도 구별되지 않는 천장도 바닥도 없는 끝없는 천지예요. 어깨 위에 올려진 무거운 설치래 다 내려놓으면 가볍게 날 수 있어요. 어둠 한 송이 먹어 보셨나요. 그리고 그의 몸에 애무해 보셨나요. 헤어진 그녀가 보여요 그날처럼 입맞춤해요. 내 몸이 뜨거워져요. 내가 아닌 나는 볼 수 없는 나는 나를 버렸어요. 욕심의 개쯤치 이젠 어둠으로 채웠어요. 개지랄하는 빛들이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