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동암 詩 모음 (190)
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오늘 비가 내린다 땅이 이유 없이 젖는다 내일도 오늘처럼 바람이 불겠지 나무들이 그냥 흔들린다 잎들을 다 떨어져 버린 그 이후에도 밤이 오고 또 아침이 찾아오겠지 그리고 또 비가 오고 바람이 불겠지 나는 어제처럼 창밖을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내일을 기다리겠지 왜? 이유 없이 기다리겠지….
달콤한 저녁이었어요. 세월로 수확한 나이 깡소주로 누르고 앉은 늙으신 네 구멍가게 앞 눈가에 졸음 겹겹 앉은 슈퍼 아주머니 힘든 저녁답 삐딱한 천막들이 다투며 머리 내민 한산閑散한 골목 저잣거리 지나? 마른 침 혓바닥 핥으며, 마트에 가요 쇼핑 일기예보 호주머니에 꼭꼭 접어 넣는 아내 손때 묻은 쌈짓돈 몇 장 몸 도사리는 데요 요즘 애호박까지 고개 들고 폼 잡는 데요 들었다 놓았다 고개 갸우뚱 씽씽한 푸성귀 진열대 앞 향내 짙은 잘 익은 햇과일들이 다투며 고개 쳐들고 아우성인 데요 마누라 눈 돌리는 심사深思 앞에 내가 좋아하는 수박 한 통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장보기인데요, 당신 직립으로 꽂히는 유혹 칼로 베듯 뿌리쳐 보셨나요? 발품으로도 고르지 못한 몰입의 긴장 무거워 지면 굴복시키는 데요 계산대..
이상한 만남 비 오는 그 날 내 생각은 깊은 굴속처럼 어두워 내가 바우능선 앞에 멈춰 선 동안 검은 바위옷 위로 또 나뭇잎 위로 네가 종일토록 울고 싶었다는 것을 난 가마득히 몰랐구나 나는 내내 널 붙들고 싶었지만 너는 한마디 입담도 전해 오지 않아서 속울음으로 찾아온 널 싫어한 것 아니어서 가벼움의 힘이여, 잠음岑崟 한 구절 가슴골에 눕히는 절기는 얼룩진 바우너설 위에 천둥 번개 같은 변호인단의 질문에도 무지갯빛 같은 고해성사는 말 못 하는 죽음의 아가리를 원망해서 잠들지 못하는 석순들 삼키고 있었어, 아름다웠어 옴 몸 애무한 너는 공중에서 내려왔으므로 지상이 환해지도록 함께 꿈꿀 수 없는 너 속옷 고럼 적시고 바짓가랑이를 붙들어도 달랠 수 없는 울음이더구나 내가 보여 주지 못할 깊은 곳 네 걸음 닿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