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동암 詩 모음 (190)
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당신 옷 벗고 누워요 당신, 옷 벗고 당신의 몸은 건천乾川 침대 위에 누워요 흩트려진 지난 삶의 얼룩 내가 설거지할게요 비빔밥처럼 엉킨 오래된 녹슨 앙금 세월의 행주로 닦아내고 당신 그 고왔던 피부 빛바래가지만 거울처럼 맑은 당신 마음 위로 튤립 꽃무늬로 덮어 드릴게요 이빨 빠진 뚝배기처럼 당신 오른손 엄지 아리던 손톱 삶의 도마 위에 남겨진 지문들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균열 진 살점 하나 귀 열 수 없어요 생의 식탁 위에 불빛 수런대는 그 생의 파편 불러 새워도 위태롭게 끓어 넘던 뇌혈관의 뾰루지 옆머리 헛된 예언 같은 바코드를 새긴 흉터에서 소용없이 어리석게도 불꽃만 원망하고 있어요 당신의 몸은 가을 잎 당신, 옷 벗고 누워요 내가 설거지할게요 죽기 전에 돌려놓아야 할 앙금의 각도 영으로 맞추고 밤마..
29분 전 풍경 낙성대역 4번 출구 앞 긴 나무때기 의자에 앉아 약속 시간 29분 전, 막 문 여는 복덕방 그 앞 도보길 따뜻한 체온들 기다리며 많은 사람 흐름의 빛 감아 젖힌다 복숭앗빛 화장한 여자의 짙은 향 사그라지기 전에 갈색 머리 휘장 된 머리핀 전송된 햇살 따윈 무시한 채 국화꽃 봉우리처럼 가슴 살짝 열고 헤픈 웃음 내지르는 여자 앞질러 구멍 난 청바지 적정 온도를 잃어버린 실밥의 촉수로 지하철 입구를 뚫어지게 겨누는 여자 햇귀 드리우는 속탈 바람 은행나무 돌아 나가는 동안 감빛 구두 거위걸음 그 여자와 보폭 맞추며 걸어가는 살 오른 까투리 꼬리 같은 양 갈래 꽁지머리 여자 배낭 背囊에서 잘 익은 배 속살 메모지 끄집어내는 호흡 사이 코스모스 꽃대처럼 다리가 긴 여자 뒤를 핥으며 황소 코뚜레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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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얼굴 솜털 세우는 당신 저녁이면 이젠 차가운 손으로 드르륵 문 열고 들어서는 군요 온몸 던져 싸우는 암 병동 절박한 희망 보듬던 따뜻한 손이었던 한때는 탱탱했던 당신 박 꼭지처럼 말라 가는군요 차갑게 식어가는 당신의 마음 아싹 씹으면 구멍 난 호주머니에서 움츠린 깃털들이 흘러내려요 발톱 새운 발걸음마다 풀 벌레 소리 가지런히 눕고 창가 찰찰 한 밤바람 소리 따라 밤사이 비워진 병상 꾸겨진 홑이불마저 설렁해요 핏빛 잃은 육골 그 체온 당신의 큰 사랑의 그 속에 들 수 있나요 키다리 수수밭도 고개 숙이네요 축 처진 어깨 위로 진록의 잎들이 아슬아슬 떨고 있군요 세상의 가파랐던 길 바라보던 암 병동 열린 창밖 무거운 몸 끌고 서쪽으로 가는 오리 목도 너도밤나무도 깊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아물지 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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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하늘 깨우는 소리 (북한산 밤골에서) 진 녹의 수다 왁자지껄 산 늑골 덮고 있는 초가을 장다리 죽 竹 바위 아래 다문다문 무릎 꿇듯 대역죄를 지은 것처럼 두 팔 벌리고 선 밤나무 그 그늘 깊이 필생의 고고한 소리 내고 부서지는 물의 마음 뽑아 든다 의족도 없이 잔돌 밭 고갈의 계곡 맨발 내딛던 깃털 하나 자라지 못하는 뼈 없이 흐르는 모습 불러 새운다 땅 위 그 바위 아래 낡고 낡은 늙은 그리메 절곡의 푸른 입술 꽉 다문 채 낙낙 무언 수로 한 겹 돌의 피부가 될 때까지 부서져도 또 부서져도 바위 내공의 꿈 품고 수척 해 지는 산빛 씻어 아우르던 수직의 성루聲淚 두 눈 감지 못하고 하늘 모서리 맴도는 환청 진창으로 자갈길 굽이굽이 돌아가는 시린 발 두 손으로 꼭 붙잡고 흐르던 목쉰 외마디 따뜻하게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