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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마지막 남긴 말 인생은 마라톤삶의 바퀴에 첫발 내디디고숨 가쁜 생의 레이스 끝에나는 이제 종점에 도착했다오내 몸 깊이 지니고 있던 암 덩어리도내 손에 쥐고 있던 욕심도 그렇게 간절히 보고파 했던 사랑도모두 모두 이승의 길목에 놓아두고가볍게 떠납니다슬퍼하지 마오때가 되면 다시 만나리불기 속 한 몸 던져나는 한 줌의 구름 되었다가넓고 평화로운 하늘나라에서훨훨 날아다니다가바람이 되고 비방 울이 되어다시 돌아오리 길 섪 야생화가 되고 풀꽃이 되어삶의 길을 바라보리언젠가 잎이 되고줄기가 되고 뿌리가 되고 꽃이 되어우린 또 만나리저 먼저 떠나갑니다이승의 문이 닫히고이젠 저 맑고 평온한 나라로 가볍게 날아갑니다그림자 없는 빛으로어둠의 별을 형제 삼아 저세상에서 편안하게 누리리오이제 안녕가볍게 보내주신 영혼들이여 안녕
강가에서 통나무 의자 혼자 졸고 있다강물속에 앞산 그림자로 잠기고 통나무 의자는 산 그림자에 기대고저문 하루는 혼자 졸고 있다 가끔은 나도 그런 의자가 되고 싶다통나무 의자등에 손을 얹습니다 돌아보는 모습이 수척합니다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굽어 눕습니다저녁에는 강물위로 별빛들이 다투어 빠저 듭니다물비늘이 별빛을 지워느라 발걸음이 바쁩니다기다림은 언제나 환합니다오늘도 통나무 의자는 혼자 졸고 있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길 끝 변함없이 햇살이 쪼이고 그늘이 눕고 붉은 얼굴들이 고개를 숙인다 알 수없었던 일들이 알고보면 싱겁다 맛이 없다 맛보다 빛 바랜 내일도 어둡고 침침하다 짚고 일어설 지팡이가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오늘도 바람이 불고 꽃비가 내린다 또 꽃은 피겠지 그날이 지나가는 것 처럼
[2007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활 정상혁 '활'하고 무사처럼 차분히 발음하면 입 안의 뼈들이 벼린 날처럼 번뜩이고 사방은 시위 당겨져 끊어질 듯 팽팽하다 가만히 입천장에 감겨오는 혀처럼 부드럽게 긴장하는 단어의 마디마디 매복한 자객단처럼 숨죽인 채 호젓하다 쏠 준비를 하는 순간 모든 게 과녁이다 호흡 없던 장면들을 노루처럼 달리게 하는 활활활 타오르게 하는 날쌔고 깊은 울림 허공의 누군가가 '활'하고 발음했는지 별빛이 벌써부터 새벽을 담 넘어가 내일로 촉을 세운 채 쏜살같이 내달린다 [당선소감] "채우고 채워 스스로 빛나는 사람 되겠다" 방 안에 앉아 창가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날씨가 참 좋았다. 순간순간 햇빛을 받은 먼지가 소행성처럼 빛났다. 그리고 이제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