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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달콤한 저녁이었어요. 세월로 수확한 나이 깡소주로 누르고 앉은 늙으신 네 구멍가게 앞 눈가에 졸음 겹겹 앉은 슈퍼 아주머니 힘든 저녁답 삐딱한 천막들이 다투며 머리 내민 한산閑散한 골목 저잣거리 지나 마른 침 혓바닥 핥으며, 마트에 가요 쇼핑 일기예보 호주머니에 꼭꼭 접어 넣는 아내 손때 묻은 쌈짓돈 몇 장 몸 도사리는 데요 요즘 애호박까지 고개 들고 무게 잡는 데요 들었다 놓았다 고개 갸우뚱 씽씽한 푸성귀 진열대 앞 향내 짙은 잘 익은 햇과일들이 앞다투며 고개 쳐들고 아우성인 데요 마누라 눈 돌리는 심사深思 앞에 내가 좋아하는 수박 한 통 차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장보기인데요, 당신 직립으로 꽂히는 유혹 칼로 베듯 뿌리쳐 보셨나요 발품으로도 고르지 못한 몰입의 긴장 무거워 지면 굴복시키는 데요 계산대..
이상한 만남 비오는 그 날 나의 생각은 관악산처럼 높았다 내가 바우능선 앞에 멈춰 선 동안 검은 바위옷 위로 또 나뭇잎 위로 네가 종일토록 울고 싶었다는 것을 난 가마득히 몰랐구나 나는 내내 널 붙들고 싶었지만 너는 한마디 말도 전해 오지 않았어 아직 뒤 따르지 못한 살점들이 구름의 뼈 낚고 있었어 속울음으로 찾아온 널 싫어 한 것은 아니었어 가벼움의 힘이여, 잠음岑崟 한 구절 가슴골에 눕히는 절기는 얼룩진 바우너설 위에 인질로 잡혀있는 것 아니었어 천둥 번개 같은 변호인단의 질문에도 무지갯빛 같은 고해성사는 말 못 하는 죽음의 아가리를 원망했어 잠들지 못하는 석순들 삼키고 있었어, 아름다웠어 옴 몸 애무한 너는 공중에서 내려 왔으므로 지상이 환해지도록 함께 꿈꿀 수 없는 너 속옷고름 적시고 바짓가랑이를..
당신 옷 벗고 누워요 당신, 옷 벗고 당신의 몸은 건천乾川 장미꽃 무늬 침대 위에 누워요 흩트려진 지난 삶의 얼룩 내가 설거지할게요 비빔밥처럼 엉킨 오래된 녹슨 앙금 남은 세월에 녹여내고 마른 생선 비늘처럼 당신 그 고왔던 피부 빛바래가지만 당신, 옷 벗고 누워요 거울빛 마음 위로 튤립 꽃무늬로 덮어 드릴게요 이빨 빠진 뚝배기처럼 당신 오른손 엄지 아리던 손톱 삶의 도마 위에 남겨진 지문 속에 태양의 바퀴 나는 매일 굴려도 좀처럼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수도꼭지 물소리로는 쓸쓸히 떨어져 나간 균열 매울 수 없어요 삶 속에 수런대는 파편들 불러 새워도 위태롭게 끓어 넘던 뇌혈관의 뾰루지 수술 자국 옆머리 헛된 예언 같은 바코드를 새긴 흉의 페이지에서 사라진 시간 몇 쪽 넘기자 소용없이 어리석게 나침판처럼 안..
29분 전 풍경 낙성대역 4번 출구 앞 긴 나무때기 의자에 앉아 약속 시각 29분 전, 막 문 여는 복덕방 그 앞 도보길 따뜻한 체온들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 흐름의 빛 감아 젖힌다 복숭앗빛 화장한 여자의 짙은 향 사그라지기 전에 갈색 머리 휘장 된 머리핀 전송된 햇살 따윈 무시한 채 국화꽃 봉우리처럼 가슴 살짝 열고 헤픈 웃음 내지르는 여자 앞질러 구멍 난 청바지 적정 온도를 잃어버린 실밥의 촉수로 지하철 입구를 뚫어지게 겨누는 여자 햇귀 드리우는 솜털 바람 은행나무 돌아 나가는 동안 감빛 구두 거위걸음 그 여자와 보폭 맞추며 걸어가는 살 오른 까투리 꼬리 같은 양 갈래 꽁지머리 여자 배낭 背囊에서 잘 익은 배 속살 메모지 끄집어내는 호흡 사이 코스모스 꽃대처럼 다리가 긴 여자 뒤를 핥으며 황소 코뚜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