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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독음 不知香積寺 數里入雲峯 부지향적사 수리입운봉 古木無人徑 深山何處鍾 고목무인경 심산하처종 泉聲咽危石 日色冷青松 천성열위석 일색냉청송 薄暮空潭曲 安禪制毒龍 박모공담곡 안선제독룡 해설 향적사 어디쯤인지 가능치 못해 구름 봉우리 속몇 리 길을 헤메네. 고목이 우거져 오솔길조차 없고 깊은 산 속 어딘가에 들려오는 종소리. 샘물 솟아 가파른 바위에서 흐느끼고 햇살은 푸른 소나무를 눈 시리게 비추네. 해질녁 고요한 연못 구비에 앉아 편안히 참선하며 마음 찌꺼기 걷어 낸다네.
비행의 시간 내일을 겨냥할 수 없는 시간의 원거리 돌아서 허공에 몸을 맡기고 화살촉처럼 가벼워져 공 밖에서 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저 순한 순결이 더 깊이 내 속으로 파고들면 비행의 속도에서 허공의 무게 청각 끝에 매달린다 삶의 늪에서 엉키는 생의 다색 다형의 냄새 슬픔 발자국 흰 구름 위로 퀭한 눈도 그만큼 젖거나 어둡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생각 없이 허와 허의 둘레 안으로 한잠만 불러들인다
관악산이 만삭이다 구본홍 먼 바람의 발걸음 소리 봄을 예감하는 나무들 시인처럼 조용하게 더 깊이 뿌리 내린 관악산 중턱에 비명보다 투명한 하늘빛 품은 저 목각의 형상 제 몸 한 톨 물기마저 유산해 버린 죽음 밖으로 내몰린 명상들 세모가 되고 네모가 되어 다시 태어났다 내 마음 어디를 깎아내야 둥근 영혼이 되나 차가운 바람 벗고 간 몸에서는 언젠가 몇 장의 바람의 뼈와 빛살 잉태한 후 청록색 눈 뜨는 진통이 한창인 오르막길 새소리 많이 들린다는 푯말을 지나 상수리나무 가지 끝에 핀 맑은 울음 보인다 더 높이 날아오르고 싶은 시간 흥건한 까치둥지 지독한 산도의 잉잉거림 허공에 눌어붙는다 지상에 웃음소리 발걸음에 묻어 나르면 나무들의 몸속에서 만삭의 태동이 절걱 인다 고사목 등 뒤로 햇살 피워 자리 달군 연주..
데스밸리 거인을 보다/ 구본홍 시인들이 쓰다 버린 활자들의 무덤 저 강렬한 표정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입술 깨물던 책갈피 속 녹아내린 쉼표 하나 먼 길 걸어온 삶의 이정표 그 작은 한 알 하고 싶었던 의미 숨긴 채 세월의 각 바싹 마른 적막으로 매달려 질긴 인연 가 닿을 때도 없이 그는 말없이 낡은 책갈피 넘기며 더 푸른 욕심 같은 어휘 뿌리내릴 자리가 없다. 뜨거움의 속내 핥은 무소유로 선 선인장 가시 같은 서럽고 외로운 질문 있을 뿐 무게 중심 잡던 그 깊은 의미 숨긴 채 숨죽인 속으로 곰삭아 다져 놓은 바람이 벗기고 간 비명보다 더 서걱이는 언어들 몇 장의 수분을 태우며 듬성듬섬 지워진 흔적 위로 불탄 졸음 하나 올려놓을 수 없다 녹슨 철조망에 붙들린 덤불위드처럼 밤을 지새우던 눈빛 켜켜이 에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