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동암 詩 모음 (191)
동암 구본홍과 나눔의 방
네가 나를 보내던 모습 생각이 나니 옷자락 부여잡고 놓아 주질 않았지! 돌아와도 내 얼굴엔 기쁜 빛이 없고는 원망하듯 그리워하듯 그런 기색만 비쳤지 홍역으로 이별하는 거야 내 어쩔 수 없다지만 등창으로 이별하다니 무언가 잘못됐어라 서산 명약을 썼더라면 나쁜 기운 다스려 그런 독이 남몰래 자랄 수 있었으랴 인삼 녹용이나 달여 먹여 볼 것을 맹약이 어찌 그리도 망할 약이던가 지난번 모진 괴로움 네가 겪고 있었을 적에 이놈은 한창 질탕하게 즐기고 있었느니라 푸른 물결 한가운데서 장구치고 놀기도 했고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따라주며 즐기기도 했어라 내 마음 거칠었으니 재앙 받아 마땅하지! 이러고야 제 어찌 징벌을 면할 건가? 내 너를 소 내로 데리고 가서 서산 언덕 양지쪽에 묻어 둔 그곳에 나도 언젠가 거기 가..
너는 나의 일상이다 숯덩이처럼 검은 얼굴로 찾아오는 너는 내 마음 설레게 하는 친구이다 단 하루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너이지만 항시 너를 대 할 때 마다 긴장의 끈 놓을 수 없는 너 백지의 마음을 더듬어가는 붓끝의 절임으로 써 내려가는 시간 아침 햇살처럼 마음에 내 걸린다 눈 녹은 물방울 땅 위로 한획 치듯 쓰고 또 쓰 내려가는 낱장들만 속없이 허공에 포로롱 마음을 내 걸고 있다 형광 불빛 아래 널브러진 검은 얼굴 방랑자의 내공을 들여 마신다 왜 내 이름을 여기 새겨 넣어야 하나 총 칼로 무장하고 점령한 공화국 깃발처럼 어쩜 흔들리는 내 맘이 궁금했을지도 모르지만 벽에 걸린 부표 같은 부력들이 촘촘히 허탈한 근조 증으로 얇아져 있다 누구도 서예를 하는 사연을 묻지 않지만 진통 겪는 순간 눈 감아도 환..
봄비가 올 때면/동암 도시의 마음 슬퍼 보일 땐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빗방울들은 바람의 앓는 소리엔 관심조차 없었다 만장처럼 펄럭이던 나뭇잎들은 새 울음소리를 흠뻑 적시고 있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물기 머금은 기왓장들은 비늘처럼 번들거리고 우산 받쳐 들고 가는 발걸음은 무겁던 습기 털어 내며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와 복잡한 도시의 내부 속으로 흡입되고 있다 높은 건물 안에서는 마우스를 옮겨가며 아직 인화되지 않은 꿈들을 복사하지만 축축해지는 꿈들이 강물처럼 불어 오른다 처마에 끝에 맺혀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한때의 울음소리처럼 슬프다 식은 밥사발에 고향의 흙냄새가 흥건하다 고향에도 비가 내리고 있을까 어린 시절 기억하고 있을 봄비 소리에서 검은 고무신 발소리가 들린다 풍요가 만찬이어도 비 오는 날이면 꼬..